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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남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교우회의 소식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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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회회장 선거관련 기사 교우회보 특집
고대교우회보가 특집을 보내왔습니다.
05/20/2011
Posted by Los Angeles 김성철 (경영 58) Bt_email


 
 교우회장 최종후보인 구천서 교우에 대한 인준 부결
3시간 여 긴장과 공방 끝에 투표 진행
  
교우회 정기총회 

  [특집] 2011-05-20

 

 

 

교우회(회장 직무대행=송정호•법학61)는 지난 4월 28일(목) 오후 6시 30분 교우회관 대강당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교우회장 최종후보인 구천서(경제70•한반도미래재단 이사장) 교우의 인준안을 상정해 표결에 부쳤으나 부결됐다. 투표 참여 대의원 462명 가운데 206명이 찬성하고 252명이 반대해 의결정족수인 과반을 넘지 못했다(무효 4표). 이로써 지난해 12월 제29대 천신일(정외61) 회장의 사퇴이후 직무대행체제였던 교우회장 선출은 결국 무산됐다.

오후 6시 30분 홍용택(재료공71) 교우협력국장의 사회 및 성원보고와 장광준(경제72) 사무총장의 회무보고로 정기총회의 막이 올랐다. 제30대 교우회장 인준이 안건으로 올랐던 만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번 정기총회에는 많은 대의원들이 참석했다. 교우회 대의원 총 3726명 가운데 419명이 위임장을 제출했고, 471명이 직접 정기총회에 출석해 총 890명이 참석했다. ‘총회는 대의원 300명 이상의 출석으로 개회하고 재석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교우회 회칙 제18조에 따라 정기총회가 개최됐다.

송정호 회장은 “금일 안건들이 잘 처리될 수 있도록 교우분들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인사하며 총 3개의 안건을 상정했다. 제1호 안건은 ‘2010년도 결산(안) 승인의 건’, 제2호 안건은 ‘2011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 승인의 건’이었다. 제3호 안건은 ‘제30대 임원 선출’의 건으로, 제3호의 1 감사 선출 건과 제3호의 2 교우회장 인준•선출 건이 상정됐다. 이날 총회에서 제1호, 제2호 안건은 큰 어려움 없이 승인됐고, 제3호의 1 감사 선출 건은 몇몇 대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진 끝에 이성규(법학71), 한덕철(경영78) 교우가 신임 감사로 선출됐다. 그러나 제3호의 2 안건인 교우회장 인준•선출 안건은 부결됐다.

 

 


유인물 배포 등 소동 일어
교우회는 그동안 회장을 뽑을 때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사실상 신임 회장 내정자라고 할 수 있는 최종후보 1명을 선출하고 정기총회에서 이를 그대로 인준하곤 했으나 이번에는 구천서 교우의 인준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 이례적으로 표결에 부쳤다.

구천서 교우가 운영하던 보안경비업체 시큐리티코리아의 상장폐지와 관련해 최근 구 교우가 (쭲) (쭳)검찰에 의해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교우회 내부에서 ‘자격’ 논란이 일어났다.

정기총회 시작에 앞서 구 후보의 회장 인준을 반대하는 일부 교우들이 총회장 앞에서 대의원들에게 인준 반대 이유를 담은 유인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한편, 7개 단과대학 교우회장들(공대 정희용•생명과학대 김규태•이과대 변원석•문과대 원대연•의과대 김정묵•법과대 김종빈•경영대 허창수)은 <고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대의원님께 드리는 호소문>이라는 유인물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교우회장 후보로 추천된 구천서 교우는 검찰로부터 횡령•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전임 교우회장의 전철을 밟게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총회에서 구 후보의 인준이 부결된다면, 우리들은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하여 깨끗하고 흠 없는 새로운 후보를 추천하여 임시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하는 절차를 밟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 <제30대 교우회장 후보 구천서입니다>라는 제목의 유인물도 총회에 출석한 대의원들에게 배포됐다. 구 후보는 이 유인물을 통해 “최근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정정당당히 선출된 교우회장 후보를 근거 없는 허위사실로 모함하고 심지어 사퇴압박까지 하는 일부 50년대 학번, 60년대 학번 선배 교우님들이 있습니다”라며 “반민주주의적인 그분들의 행태에 흔들림 없이 끝까지 모교와 교우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고성 오가는 등 격한 분위기
오후 6시30분에 시작한 정기총회는 3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개표가 완료될 만큼 장시간 격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논란은 송정호 회장의 직무대행•수석부회장 자격에 대한 문제제기에서부터 시작됐다.

교우회 회칙 제11조는 회장 유고시 직무대행체제에 대해 ‘①부회장은 회장을 보좌하며, 회장 유고시에는 수석부회장이 그 직무를 대행한다. 다만, 회장의 지명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회장은 단과대학교우회장 중에서 수석부회장을 지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회칙에 대한 해석을 두고 송 회장의 사퇴와 임시의장 선출을 요구한 대의원들과 송 회장을 비롯한 현 집행부 체제 유지를 주장하는 대의원들이 맞섰다. 30분 넘게 대의원들의 발언이 이어졌지만, 정기총회를 주재하는 의장으로서의 송정호 대행의 자격은 유지돼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해 논란은 일단락됐다.

제1호, 제2호, 제3호의 1 안건이 승인되고 제3호의 2 안건인 교우회장 인준•선출 안건이 상정되자 총회장 안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구 후보 지지파와 반대파로 뚜렷하게 갈린 총회장 안에서는 표결 직전까지 내내 고성이 오갔다. 20여명의 대의원들이 발언권을 얻어 회장 인준에 대한 의견을 냈다.

 

 


구 후보의 인준을 반대하는 대의원들은 “만에 하나 구천서 교우가 인준돼 회장 임기 도중 또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고대교우회는 두 번에 걸쳐 불명예를 안게 된다”며 “교우회장은 법적,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교우가 맡아야하는 명예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구 후보를 지지하는 대의원들은 “구천서 후보의 불구속 기소를 두고 많은 교우들이 걱정하는 것은 알지만 기소된 것만 가지고 죄인 취급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구 후보가 합법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교우회장 최종후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발언권을 얻기 위해 일부 교우들이 의장석이 있는 단상위로 직접 올라오는 등 소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이원교(화공63) 교우가 발언권을 얻어 원만한 총회 진행을 요구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119 구급대원들이 총회장 안으로 달려오는 위급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교우는 병원으로 후송돼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가 그날 자정이 넘어서야 의식이 회복되고, 후일 심혈관계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송정호 회장은 “이런 식으로 서로 발언하다보면 밤새도록 회의를 진행해도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며 표결을 채택했다. 약 30분간 462명의 대의원이 투표에 참여했고 오후 10시가 조금 넘어서야 개표가 마무리 됐다. 개표결과 찬성 206명, 반대 252명으로 ‘회장은 회장후보자추천위원회에서 추천된 후보자를 총회가 재석 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인준하여 선출한다’는 교우회 회칙 제14조 2항에 의거 구천서 교우회장 최종후보의 인준안은 부결됐다.

제30대 교우회장 인준을 위한 정기총회의 벽을 넘지 못한 구천서 교우는 개표결과 발표 직후 “교우들의 뜻이므로 할 말이 없다”며 짧게 소감을 밝혔고 재출마 의향을 묻자 “교우들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라고 말하며 총회장에서 나갔다.

교우회는 ‘인준이 부결된 때에는 현 임원의 임기를 연장하여 3개월 이내에 재선출한다’는 회칙 제14조 2항에 따라 앞으로 3개월 안에 신임 회장 재선출을 마쳐야 한다.
김학휘 기자

 
 
  
 만장일치 추대 전통을 근간으로 경선 방식 수용
  
제30대 교우회장 인준 부결을 계기로 살펴 본 역대 교우회장 선출 과정  

  [특집] 2011-05-20
제30대 교우회장 후보추천위원회에 의해 최종 후보자로 추천된 구천서(경제70) 교우에 대한 인준이 부결되었다. 지난해 12월 천신일 회장의 구속과 사퇴 이후 진행된 교우회장 선출 과정은 파행의 연속이었다.

애초 회장 후보자 공모에 등록한 김중권(행정59) 교우와 구 교우를 대상으로 한 2월16일의 후보추천위원회는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송정호 교우회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집행부에 대해 공정한 선거관리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김중권 교우는 2차 후보 공모를 결정한 3월 8일의 회장단 회의 무효 소송과 2차 공모에 등록한 이기수(법학65) 교우에 대해 후보 등록 무효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김 교우를 제외하고 이기수•구천서 교우를 대상으로 한 4월 14일의 후보추천위원회에서 구 교우를 최종후보로 추천하였지만, 불과 며칠 후 구 교우는 개인 사업과 관련된 횡령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4월 28일 열린 정기총회에서는 구 교우에 대한 교우회장으로서의 품격 논란이 격렬하게 일어났고 결국 인준안은 부결되었다.

합의 추대에서 경선 방식으로
교우회 창설 이래 교우회장 선출은 대체로 원만하게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때로 총회가 연기되는 사례가 생겼지만 곧 다음 총회에서는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이번 선출 과정처럼 후보자가 교우회 집행부와 상대 후보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단일후보로 추천된 교우가 총회에서 인준이 부결된 사례는 처음 있는 일이다.

고대교우회의 전신인 보전친목회가 창립총회를 가진 것은 1906년 12월 16일이었다. 1905년 입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남은 후배들과 동지적 결합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보전친목회를 결성하였고 초대 회장으로 법과1회 조성구 교우를 선출하였다.

이듬해 3월 24일 보전교우회 이름으로 열린 총회에서 법과 강사인 석진형이 회장을 맡게 되는데 이는 이 무렵 교우회와 모교가 서로를 거의 한 몸처럼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후 1940년대까지 모교 교장이 교우회장을 겸직하는 전통이 유지되었고 교우회 실제 활동은 졸업생들이 담당하였다.

1946년 6월 27일 광복 후 처음 열린 총회에서도 현상윤 교장이 회장을 겸임하게 되는데, 인촌 김성수 선생은 모교 교장과 회장 겸직에 반대하는 교우들에게 어느 시기보다 모교의 단결이 필요한 때임을 강조하고 간곡하게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상윤 선생이 6.25동란 와중에 납북됨으로 인해 1954년 7월 4일 열린 총회에서 황태연(04경제) 교우가 회장에 선출됨으로써 본격적으로 교우 회장 시대가 시작되었다. 초대 황태연(1954-1956), 2~6대 이병도(1957-1966), 7~8대 한종민(1966-1970), 9~11대 김성곤(1970-1975), 12~16대 김원기(1975-1985), 17~18대 장덕진(1985-1989), 19~20대 김일두(1989-1993) 교우가 교우회장으로 선출되는 과정은 전형위원회에 의한 만장일치 합의 추대라는 전통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1975년 김성곤 회장의 유고로 김원기 직무대행 체제에서 열린 1976년 3월 정기총회는 이번 30대 회장 선출과 유사한 진통을 겪었다.

즉 당시 야당 당수였던 이철승 교우가 회장 후보 물망에 오른 가운데 김원기 교우와 중재를 이루지 못하고 1976년 총회가 무산된 것. 이후 전형위원들이 광범위하게 교우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였으나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해를 넘겨 1977년 2월에 김원기 회장 체제로 회장 선출문제가 매듭지어졌다.

이때부터 임원선출 기구의 명문화와 선출방식의 합의 문제가 교우회의 중요 과제로 제기되었다.

경선 투표에서 추천위원회 방식으로
21대 정세영 회장은 1993년 3월 정기총회에서 참석 교우들의 거수 표결 방식을 통해 선출된, 최초의 직선제 교우회장이었다. 정세영 회장은 취임 직후 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어 전면적인 회칙 개정안 작업에 착수하여, 500명 규모의 대의원 제도를 마련하고 대의원 300명 이상 출석, 재석 대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총회 의결 방식을 전환하였다.

1997년 3월에 열린 총회는 1976년 총회에 이어 두 번째로 임원 개선에 실패하였다. 정세영 회장을 비롯해 이철승, 장철희, 조식원 교우가 후보로 등록한 가운데 절충이 이루어지지 않아 임원개선을 위한 임시총회를 한 달 후인 4월 17일 갖기로 한 것. 결국 이철승, 장철희 후보가 사퇴하고 정세영, 조식원 교우 두 사람의 경선 투표가 이루어져 정 교우가 23대 회장이 되었다.

이로써 교우회장 선출을 위한 최초의 경선 투표가 시행되었는데, 총회가 한 달간 연기되는 진통을 겪었지만 빠른 시간 안에 원만한 해결을 이룬 셈이다.

1999년 3월 총회에서는 구두회, 이동호, 윤재명, 이세기 교우가 후보로 나선 가운데 경선이 진행되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1,2위를 차지한 구두회, 이동호 교우를 대상으로 결선투표가 진행되어 구 교우가 24대 교우회장에 선출되었다.

회장 선출을 위해 결선투표까지 진행되는 과열 현상에 대해 교우들의 우려가 높아지자 교우회는 2002년 회칙을 개정하여 ‘회장후보자 추천위원회’를 신설했다.

위원회는 교우회 고문, 회장, 단과대학 교우회장인 부회장으로 구성되고,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추천을 받은 자를 회장 후보자로 하고 총회에서 인준 절차를 갖기로 하였다. 교우회는 이와 함께 경선 방식도 배제하지 않아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지 못한 후보가 일반 대의원 50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 후보등록을 하게 되면 총회에서 표 대결을 통해 회장을 선출하도록 한 것.

2003년 3월 열린 총회는 후보추천위원회의 후보자로 추천된 박종구 교우와 일반 대의원 50인 이상의 추천으로 후보에 등록한 이용만 교우 간 치열한 경선이 예상되었다. 그런데 총회 직전 이용만 교우가 교우회의 단결을 호소하며 조건 없는 사퇴를 선언하여 박 교우가 박수 속에 26대 회장이 되었다.

2007년의 28대 회장 후보로 허은도, 김중권, 천신일 교우가 등록하여 추천위원회에서 천신일 교우가 최종 후보로 추천되었고, 정기총회에서 경선 없이 박수로 회장에 추대되었다.

천 회장은 취임 후 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어 후보추천위원회의 최종 후보 결정과 총회에서의 인준 투표 방식으로 회장 선출 제도를 변경하였다. 종전에 일반 대의원 50인 이상의 추천을 받을 경우 후보 등록을 인정하고 추천위원회에서 추천된 후보와 경선이 가능하도록 한 제도를 후보 등록 후 추천위원회의 최종 후보 결정으로 일원화한 것이다.

30대 회장 선출 과정에서의 문제점
역대 교우회장 선출 과정은 대체로 초기의 합의 추대 방식에서 1990년대 이후 경선 방식의 수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경선에 의한 투표가 진행된 것은 1997년과 1999년 두 번이었다.

2002년에 만들어진 제도는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초기의 합의 추대 방식을 살리면서 일반 교우들의 추천에 의한 후보자와의 경선 가능성도 열어 둔 절충형 제도였다. 2007년 천신일 회장은 이것을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한 결정과 인준 투표로 일원화하였다.

교우회는 초기에는 친목단체라는 특성을 살려 합의 추대라는 전통을 만들어냈고, 경선의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서는 이를 반영하여 대의원 경선 제도를 마련하였다. 후보추천위원회에 의한 최종 후보자 결정과 총회에서의 인준 절차를 거치게 되는 현행 제도 역시 교우 화합과 민주적 임원 개선이라는 목표를 이루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런데 이번 30대 회장 선출 과정에서는 교우회 집행부의 매끄럽지 못한 선거 관리와 후보자 간 과열 경쟁에 의해 교우 화합과 민주적 경선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모두 훼손되고 말았다.

2월 16일 후보추천위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된 것은 선거관리의 책임이 있는 집행부가 이를 성실히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교우회 내부에서 합의점을 찾지 않고 법정 소송을 제기한 후보, 정상적인 교우회장직 수행에 심각한 위기가 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진 사퇴하지 않고 끝내 인준 부결에 이른 후보 모두 교우 화합이라는 대의에서 벗어났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30대 교우회장이 되느냐는 이제 교우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제라도 교우 화합과 합의의 전통을 살리고 민주적이며 투명한 절차를 통해 이 위기를 넘어 한국 최고•최대의 대학 동창회의 위상을 회복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박기범, 전혜영 기자

 

 

 


 
  
 <교우칼럼 > “창피하구나, 고려대 교우회”

  [여론, 칼럼] 2011-05-20
고려대교우회 차기 회장 최종 후보에 선출된 직후 횡령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구천서(61) 한반도미래재단 이사장이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한숨을 돌렸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구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회장 취임을 준비할 수 있다. 28일 열리는 정기총회에서는 그에 대한 인준 여부가 결정된다. 최종 후보는 만장일치 박수로 인준을 받는 게 관례였다. 회칙엔 3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참석한 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며, 부결될 경우 3개월 이내에 회장을 새로 뽑게 돼 있다.

회장 자리 진흙탕 싸움 꼴불견
그런데 이번엔 박수 치고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선거과정에서 잡음과 갈등이 심했던 데다 구씨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구씨는 상장 폐지된 보안업체 시큐리티코리아의 실소유주로, 다른 업체와 거래한 실적을 부풀려 회사 돈 10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2002년 대한태권도협회장 선거 때는 폭력배를 동원해 상대 후보 지지자들의 투표 참여를 막은 혐의로 이듬해 구속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천신일 회장이 특정 기업의 세무조사 무마를 알선하고 수십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불명예 퇴진한 뒤, 후임자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 상황이다. 구천서 씨,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중권 씨(72)가 출마했으나 2월 16일 열린 후보 추천위는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교우회 회장단은 출마 희망자를 추가로 접수했고, 4월 14일 추천위에서 제 3의 후보 이기수(66) 전 고려대 총장을 근소하게 누른 구씨가 최종 후보로 뽑혔다. 그러자 김씨는 회장단 결정과 이 전 총장의 출마가 무효라는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해병대전우회, 호남향우회와 함께 대한민국 3대 조직으로 꼽히는 고려대교우회는 진흙탕싸움으로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회장이 취임했을 때부터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교우회장이냐고 창피해하는 교우들이 많았다. 그런데 천씨는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한 데 이어 처음으로 구속되는 불명예까지 기록했다. 그 과정은 정말 볼썽사나웠다.

고려대 출신들은 “우리도 대통령 하나 만들어 보자”고 힘을 모았고, 이런 노력과 시대적 요구가 맞물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동문과 나라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그 이후 감시자나 비판자, 아니면 최소한 조용한 후원자가 돼야 할 텐데 교우회는 목에 힘을 주며 과실을 챙기려 했다. 집단의 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조직을 이용해 특정인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그 조직은 배타적 사회악으로 작용하게 된다. 교우회는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 방문행사도 기획했었다. 각계의 주요 동문들을 추려 청와대로 점심 얻어 먹으러 가는 행사였다. 누가, 왜 안팎으로 욕 얻어 먹을 발상을 했는지 한심스러워 만류했던 기억이 난다. 첫 시도가 취소된 몇 달 뒤에 같은 초청이 또 왔던 걸 보면 이 행사의 문제점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두 번째 계획도 취소되지 않았다면 청와대에서 ‘입실렌티…’교호가 울려 퍼지는 촌스러운 풍경이 연출됐을 것이다.

고려대 출신들의 남다른 모교 사랑과 자부심은 다른 학교 출신들의 부러움을 사왔지만,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애교심은 반발과 미움을 부를 뿐이다. 스카웃한 김연아를 고려대가 낳았다고 말하니 남들이 부러워하지 않고 비웃는 것이다.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고려대 출신의 어느 재외동포는 한 글에서 "대통령 한 명 배출했다고 희희낙락하지 말고, 정치꾼들이 몰려 줄을 대려는 꼴도 보이지 말고, 소박하게 친목을 도모하고 모교 발전에 기여하는 교우회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한 대학의 교우회 일을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이런 것이 고려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의 18대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출신 대학인사들이 모이고 뭉쳐 단합을 외치는 일이 요즘 잦아지고 있다.
한국일보 4월 22일자에서 전재

 

 

임 철 순
독문70
한국일보 주필
 
 
 
 
 <자명고> 교우회장이라는 명예직

  [여론, 칼럼] 2011-05-20
이 윤 희
전 농수산물 관리공사 감사

 

 

제30대 교우회장 최종후보자에 대한 인준이 부결됐다. 천신일 회장은 작년 말 임기를 세 달 앞두고 개인적인 불명예로 교우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송정호 직무대행 체제의 교우회는 새로운 교우회장 선출을 위한 일정을 만들었고 후보자를 공모하였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3월에는 새로운 회장의 임기가 시작되어야 했다.

그런데 2월 16일 열린 후보추천위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추천위원회가 무산되면서 교우회는 교우회장 선출을 위한 후보 공모로부터 일정을 다시 진행하였다. 후보추천위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된 것에 대해 후보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교우회 집행부가 책임 있는 선거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다시 시작된 선출 과정 역시 순조롭지 못했다. 후보자 한 사람은 아예 새로운 후보 등록 과정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법정 소송을 제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두 번째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어렵게 최종후보자로 구천서 교우가 선정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천서 교우 개인 사업과 관련된 불구속 입건이 보도되었다.

4월 28일 총회에서의 구천서 최종후보자에 대한 인준 부결은 그가 교우회장이 될 경우 직전 회장에 이어 새 교우회장이 연달아 구속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교우들의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른바 ‘천신일 학습효과’다. 그야말로 불명예스러운 일을 겪기 전에 어떻게든 교우회의 명예를, 그리고 교우회장의 명예를 지키려는 일반 교우들의 마음이 표출된 결과인 것이다.

이번 일을 바라보면서 일반인들은 도대체 고려대학교 교우회장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이기에 소송 사태까지 벌이며 회장이 되고자 하는지 의아해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교우회장은 명예직이다. 2003년에도 교우회보에서는 본 칼럼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명예직’이란 ‘명예로운 자리’란 뜻으로, ‘명예롭다’는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일컬어지는 자랑스러운 평판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승인되고 賞讚된다’는 것이다.”

고대 교우회장은 30만 교우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사회인의 존경을 받는 명예로운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교우회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혹시라도 있을 수도 있는 개인적인 흠결이 고대 교우회의 흠결이 될 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번 일을 보면서 특히 아쉬운 것은 교우회 집행부의 미숙함이다. 명예로운 추대이든, 치열한 경선이든, 어느 쪽이든 고려대학교 교우회장이라는 명예에 걸맞은 분을 선출하고자 하는 것이 교우들의 뜻이다. 교우 수 20만을 넘어선 지난 1990년대 이후로는 어떤 면에서 더 이상 명예로운 추대라는 형식은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정한 선거 관리와 엄정하게 민주적 절차를 마련해서 경선을 통해서도 명예로운 추대와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 교우회 집행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이제 3개월 안에 결정될 30대 교우회장이 어렵게 어렵게 태어난 아이가 훗날 큰 인물이 되는 옛이야기처럼 훌륭한 결과로 매듭지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철학64•본보편집위원>
 
 
 
 
 “존경받는 교우회장, 축제 분위기서 추대합시다!”
  
고대교우회 비상시국,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제24•25대 교우회장 구두회(경영49) 고문 

  [인터뷰] 2011-05-17
 
“지금과 같은 과열을 부추기고, 교우들간의 반목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회장 선출 제도는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라고 강조하는 구두회 전 회장  

 

 

5월 초 어느 날. 고대교우회 회장 선출을 앞두고 아름답지 못한 관련 기사가 도하 언론에 도배질되고 있는 탓일까? 새벽부터 내린 황사 섞인 이슬비 때문인지 서울은 만개한 꽃들과 우거진 녹음으로 상징되는 초여름 생명의 기운과는 거리가 멀다. 도시 전체 분위기가 우중충하고 진한 회색의 파스텔 톤이다. 작금 고대사회의 난국(難局)을 극복하기 위한 원로의 지혜와 혜안(慧眼)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인터뷰냐?”고 극구 사양하는 구두회 고문을 여러 번 졸라, 마침내 승낙을 받았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구 고문은 노타이에 남방과 편해 보이는 캐주얼한 양복저고리를 입고 나왔다.

원래 남들 앞에 나서기를 즐기지 않는 조용한 스타일의 구 고문. 3시간가량의 긴 인터뷰 동안에도 남들 같으면 격정적으로 토로할 내용임에도 한 번도 높은 소리를 내지 않고 시종일관 낮은 톤으로 신중하고 사려 깊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의 언어의 행간(行間)에서 배어나오는 평소의 고뇌와 번민, 최근 교우회장 선거를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실망과 분노와 허탈, 그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원로교우의 염려와 열정은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지난 90년대 말, 굴지의 대기업 회장을 지내고 운동과 서도(書道) 등으로 말년을 유유자적하며 보내던 구 고문. 그는 고대교우 사회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신망이 두터운 기업인이 교우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교우사회의 전반적인 정서를 읽은, 많은 뜻있는 교우들의 강청(强請)에 못 이겨 교우회장이 된다. 전임 정세영 회장에 이어 제24대, 25대 회장을 역임한 구회장의 재임기간 4년(1999~2002)은 고대교우회가 배타적인 친목단체가 아니라,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서 봉사와 희생의 정신으로 사회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조직으로서의 튼실한 기틀을 마련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특히 20세기에서 21세기로 건너가는 한 세기의 전환점에서, 기존에 고대가 가지고 있는 전통을 새로운 시대에 부합할 수 있도록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초석을 세운 시기이기도 했다. 구 고문은 “교우회는 이익단체나 압력단체가 아니라 순수한 친목단체요, 봉사단체”임을 재천명하며, 수십만 고대교우 전부를 노장청(老壯靑)의 세대차를 넘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으며, 이를 제도화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아시다시피 교우(校友)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고대교우회는 배움의 열정 하나로, 향우(鄕友)나 전우(戰友) 이상의 순수한 목적으로 모였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교우회에서 불순한 동기나 특정한 의도가 개입해서는 안됩니다.” 최근 몇 년 고대교우회가 특정인, 특정그룹에 의하여 사조직(私組織)화 혹은 사당(私黨)화되고 있다는 상황에 대한 우려와 질책의 소리로 들렸다. “월급 한 푼 받지 않고 무보수로 아니, 내 돈 써가며 봉사하는 교우회장 자리가 왜 이리 변질되고, 고대교우회가 왜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있는지” 그는 답답하고 화가 난다. “특히 언론에서 ‘고대교우회장이 뭐길래…’하는 식의 기사가 나오는 걸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라며 잠시 상념에 잠긴다.

“근본적으로 교우회장은 사심(私心)없이 순수 친목단체의 장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구 고문.

“교우회장은 반드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각계의 원로 중에서 검증이 된 분을 모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우회가 거창한 대사업을 벌이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조직에서처럼 경영능력에 치중할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조직의 수장으로서의 품격과, 구성원 간 소통능력, 사회적인 신망(信望)은 필수요건입니다. 더구나 고려대학교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을 생각하면 그 의미는 더욱 무겁지요.”

그러한 품격이 전제되고 난 연후에라야 비로소 회장후보자의 재정적인 능력, 모금능력, 경영능력 등 리더십의 각 덕목들도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사상초유의 교우회장의 임기 중 구속과 사퇴, 교우회장 선거의 파행(跛行) 등으로 상징되는 교우회의 격변을 지켜보며 그는 할 말이 많다.

“최근 모교의 총장 선출과 교우회 회장 선출과정을 보면 착잡(錯雜)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100년이 넘는 전통은 다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위기상황입니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비록 지금이 위기는 아닐지 몰라도 통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상(非常)시국은 맞다고 봅니다. 지금이 비상시국이고 위기상황이라는 인식을 할 때에야 비로소 그에 맞는 해결책도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자는 말일까?

“제가 회장으로 있을 때, 회장단선거제도를 <추대를 원칙으로 하되 경선도 인정하는 절충적인 제도>를 만들었어요. 늙은이들이 무조건 큰 소리 내자는 것도 아니고 다만 원로교우들이 할 소리는 하자는 뜻에서 고문단의 역할과 위상도 높였습니다.”

구 고문의 교우회장 임기동안 고대 커뮤니티의 어른으로서 원로교우들의 의견이 자연스레 반영될 수 있도록 고문단 제도를 활성화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는 잠언을 받아들여 중임(重任), 3연임, 4연임 등 들쭉날쭉 하던 교우회장의 임기를 본인 재임 시부터 2년 중임제로 엄격히 제한하여,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그는 구성원의 소통에 대한 관심도 각별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교우회에서는 원로교우들, 특히 고문단의 발언권이 제도적으로 원천봉쇄 되었습니다. 고문단이 제도상으로만 존재하는 형식적인 자문기구로 전락했어요. 어른의 영(令)이 서지 않는 조직이 젊은 층의 목소리인들 잘 반영이 되겠어요? 조직 내외부 간에, 구성원 상하 간에, 세대 간에 소통(疏通)이 잘되는 조직이 건강한 조직이라는 것은 상식 아닌가요?”

 

 


- 오는 5월 24일에 고문단과 단과대학교우회장 연합 간담회가 예정되어있는데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우리 고문단과 단과대학교우회장단이 모여서 진심으로 교우회의 발전을 위한 충정어린 논의를 하게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교우회 집행부의 원천적인 오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입니다. 또한 6월말까지 신임 교우회장을 선출해야한다는 규정 때문에 시간이 촉박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차제에 지금과 같은 과열을 부추기고, 교우들 간의 반목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현행 회장 선출 제도는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구 고문은 후보자간에 마타도어식의 중상모략과 고소고발이 행해지는 등 “순수해야할 고대교우회의 분위기가 바깥세상의 정치판보다도 더 혼탁해진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순수 친목단체, 봉사단체에서 수장을 뽑을 때, <절차적 민주주의>를 과도하게 강조하여 반드시 투표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우기는 것은 지나친 형식주의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오류입니다.”

- 예전에 교우회의 구심체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고문단과 단과대학교우회장들이 주축이 된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할 수도 있겠군요?

“비대위가 필요하다면 발족시켜야지요. 그러나 지금 특정한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개방적인 논의를 해야겠지요. 다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덕망(德望)있고 존경받는 분을 축제 분위기에서 추대할 수 있는 방안을 최대한 강구(講究)해 보자는 게 일단 저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구두회 고문은 1928년생이다. 경영일선에서 은퇴한 지 이미 오래다. 더구나 교우회장에서 은퇴한지도 벌써 십년이 지났다. 편안히 여생을 즐기며 지내야할 팔순을 훌쩍 넘긴 이 어른을 편히 쉬게 놓아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못난 후배들의 무능함 때문이라 자책하며 작별인사를 드렸다.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신 구두회 고문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대담 정리: 김진국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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