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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戰線 9個月-(9 Months in Korean War Front)
11/10/2013
最戰線 9個月-(9 Months in Korean War Front)
逢南 韓 泰格(www.TedHan.com)
한국의 11월 11일은 숫자 1의 모양처럼 몸매를 잘 가꾸어 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어 연인들간 사랑을 나눈다는 빼빼로 데이 (Day)라지만, 미국에서는 그 이름도 성스러운 Veterans Day(향군의 날)다. 그 유래는 세계사적으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었던 대전(大戰, Great War)이 종식(終熄)되었던 “1918년 11월11일”을 기리기 위하여 1938년5월13일 미의회에서 제정된데서 비롯한다. 당시에는 Armistice Day(종전일-終戰日)로 명명(命名)되었으나, 6.25에 참전하였던 재향군인들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1954년6월 1일 Eisenhower대통령이 개칭(改稱)법안 HR7786에 서명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Veterans Day-참전용사(參戰勇士)의 날-로 칭(稱)해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미국의 재향군인의 날인 Veterans Day는 Korean War(1950.6.25.~1953.7.27.)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1월 초, 어느날 출근길 주유소에서 필자는 Korea Veteran이라고 수(繡) 놓여진 Cap을 쓰신 노병(老兵)과 마주치게 되었다. 첫 인상이 ‘아직도 저 연세에 운전을 하시다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고령(高齡)이셨다. 대한민국에서 해군장교로 병역을 필(畢)한 필자(筆者)는 본능적으로 그 노병에게 거수경례를 올렸고, 그는 장군처럼 절도(節度)있게 답례하여 주었다. 주유를 하면서 어떻게 그 이상의 “보은(報恩)”을 할까 궁리끝에 미국에서는 ‘돈을 지불하고 사야하는’ 필자가 경영하는 판촉물 비즈니스의 샘플인 2014년 캘린더를, 필경구(筆耕具) 몇 점과 함께 ‘선물’하였다.
주유(注油)를 마친 그는 필자의 차를 주차공간으로 움직이라고 하더니, 30분에 가깝도록 네 가장자리가 닳을 대로 닳은 군복무기록증(Certificate of Service)을 내어 보이며, 한국전(韓國戰)에 참전하였던 ‘무용담(武勇談)’을 ‘설파(說破)’하였고, 의사(醫師)인 아들과 약사(藥師)인 한국인 며누리 그리고 일곱살난 손자사진까지 보여 주었다. 올해 83세로, 자신을 Fred F.로 소개한 그는 Korea와의 ‘끈끈한’ 인연(因緣)은 운명(運命)이라고 했다!
평일 오전 출근길이기에 그날 조우(遭遇)는 다음날 재회(再會)하기로 기약(期約)하고 헤어졌다. 며칠 후, Veteran Day도 며칠 남지 않은 주말, 노병은 필자의 취재에 흔쾌히 응하여 주었다.
Brooklyn에서 태어난 그는 소년기에, 마흔 셋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뒤를 이어 생계(生計)를 짊어지고 있던 스무 한 살되던 해, 징집영장(徵集令狀)을 받아 쥐게 된다. 듣도 보도 못했던 먼 나라, 전쟁터로 떠난다면 상심(傷心)하실 것이 뻔한 어머님과 8년아래 동생에게는 알라스카에서 복무(服務)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뒤로 하고, 본인 의사와 전혀 관계없는 전쟁터로 ‘뛰어’들게 된다.
South Jersey에 있는 기지(基地) Fort Dix에서 8주간의 기본군사훈련을 이수(履修)한 9사단 60보병부대는 전투가 한창인 1952년 2월 한국으로 이동하여 9개월간 최전선에 투입(投入) 된다. 당시 치열(熾烈)하였던 중부전선 전투상황를 그가 “최전선(最戰線)에서 쓴” 시(詩)한 수(首)를 통하여 들여다 보기로 한다.
Korean Rocket Fire (북괴군 로켙포화)
The rockets abound above us, dispatching their deadly cargo beyond us. (로켙포화가 온 천지를 뒤덮고 있다.)
We await a repetition, in fearful dread of an accurate arrival. (우리 진지에 떨어지지 않을까, 초조한 심정으로, 로켙포의 반복적인 공격에 반격을 가한다.)
Could we this be possibly our last moments in this freezing ground of hell? (살을 에는 추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Or just another devilish challenge of our courage to withstand this torment? (아니면, 생명을 부지하여 다음 전투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The vast open spaces explode around us in awesome lights of fury. (적개심이 작열한다)
Finally a sudden interval of silence arrives. (드디어, 불안한 적막이 엄습한다.)
Is this just an abrupt pause in the violence, or just a temporary halt to our dilemma? (폭격중지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전투중지인가?)
We await, some visibly praying for the latter, as a calm quite fills the night air. (적막하기 그지 없는 야심한 밤중, 전투가 이것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상부명령을 기다린다.)
At last a message in relief arrives, with our total gratitude. (학수고대하던 전투중지 명령이 하달된다.)
The nightmare for now is over, and most of us have survived. (당분간이겠지만, 악몽은 지났다. 많은 동료병사가 살아 남았다.)
Some day we may be seated before a warm fireplace far from here. (언젠가, 우리도 이 전쟁터를 떠나, 따뜻한 불난로 앞에 앉아 있을 날이 오겠고…)
And many of hardships we have endured may have faded with time.(시간이 경과하면 이 고난의 시간들이 잊혀지겠지만…)
But that is in the distant future, becaude now we await the next attack. (그것은 먼 훗날 이야기겠고, 우리는 당장 다음 전투준비에 대비하여야 한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병사의 수는 54,236명, 부상자는 103,000명, 생사불명 8,177명 전쟁포로 7,000명 중 생환병사(生還兵士)가 3,450명밖에 되지 않았다. 51%가 포로수용소에서 병사(病死)하였던 것이다.
Fred F. 병사가 한국전에 투입되었을 때, 필자는 일곱살이었다. 그의 참전으로 지금껏 생명을 부지(扶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쌀쌀한 주말아침 여러자료를 지참하여 나와 2시간반여 가까이 인터뷰에 응하여 주신 ‘Fred 병장’에게 필자는 금일봉(金一封)을 전달하고, 가까운 시일안에 다시 재회하기로 하였다.
Written by Ted Han on Nov. 10, 2013 NavyOfficer86201@gmail.com (718)63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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