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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虐殺 100週年 副題: 歷史認識(Perceptions of Past)
04/19/2015
大虐殺 100週年 副題: 歷史認識(Perceptions of Past) 逢南: 韓 泰格(www.Tedhan.com) 한인이민자들의 주종(主種)비지니스가 Grocery, 야채상, 세탁업 및 Nail업이라고 한다면. Armenia인 들의 비즈니스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업종인 장의업(葬儀業)이다. 미대륙 북동부에서 서부 California주까지 마찬가지다. Armenia라는 나라가 대서양에서부터 유럽대륙(大陸)의 동남부 내륙(東南部內陸)으로 멀리 떨어진 오지(奧地)이기 때문에 미대륙정착이 후발(後發)인데다 대서양연안 출신 선착(先着) 정착자(Settlers)들이 회피하는 3D 직종인 혐오(嫌惡)직업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동네 Flushing한 가운데 Northern Blvd. 141가에 위치한 J장의사도, 208가 E장의사의 업주들도 Armenia출신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한(韓)민족이 역사의 아픔을 겪고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역사가 할퀴고 간 아물지 않은 상처(傷處)가 있다. 100년이 흐르도록…… 인류의 비극인 이 역사적 사실을 A Century After Genocide, Turkey’s Denial Only Deepens라는 뉴욕타임즈 4월17일(금)자 머릿기사를 통하여 알아 보기로 한다. 4월24일이면 터키(Turkey)의 전신(前身)인 무스렘제국Ottoman Empire(1299~1922)가 자국내 소수민족 이었던Armenia인 백 오 십만(1,500,000)명을 대규모로 학살(虐殺)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때는 미증유(未曾有)의 세계대전(The Great War 1914.7.28.~1918.11.11.)이 한창이었던 1915년이다. 전성기에는 유럽동부지역, 아프리카북부지역과 아라비아 반도를 포함한 중동지역 등 삼 개 대륙을 호령하던 Ottoman제국은 1914년 독일, Austria-Hungary, Bulgaria등과 한 편이 되어, 유럽서방국가인 불란서, 영국, 이태리, 러시아, 미국과 전쟁을 벌리게 된다. 북아프리카지역을 잃고 발칸(Balkan)반도영토까지 상실(喪失)의 위기에 직면한 Ottoman제국은 국내 소수민족인 Armenia인들이 남하(南下)정책을 펴고 있는 제정 러시아 세력(勢力)를 등에 엎고 제국의 동부지역지역까지 분할, 독립하려는 기도(企圖)를 일망타진, 철퇴(鐵槌)를 가하게 된다. 이것이 Armenia인들이 주장하는 백 오십만 기독교신자 아르메니아인 대학살(Genocide)사건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대학살의 책임에 대한 사과(謝過)를Ottoman Empire의 후신(後身)인 Turkey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으나, 터키정부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否認-Denial)하고 있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시(戰時-War Time) 극한(極限) 상황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사과할 수 없으며 ‘역사가들에게 맡기자’ (Let History Decide)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러한 터키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모욕(侮辱)’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국면정환용’으로 간주하고 있다. 왜냐하면 ‘역사가들에게 맡기자’라는 태도는 아직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입증이 미흡하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살 증거는 대전(大戰)이 종료된 이후, 승전(勝戰)연합국 점령하에서 작성된 서류가 역사적 입증자료(A Historical Fact)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정부가 발벗고 나서지 못했던/못하는 이유는 냉전시대에는 한반도와 함께 소련(蘇聯)의 남하를 막아내었던 자유세계의 동맹국이었고, 현재는 ‘IS 또는 ISIS라고 불리우는 극단(極端)이슬람주의 국가’를 격퇴(擊退)하여야 하는 입장에서 터키의 협조가 필수적(必須的)하기 때문에 미국은 정치적으로 함구(緘口)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터키의 초중고 교과서에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사건에 대하여는 한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대신 같은 날인 1915년 4월24일 Gallipoli 승전사(勝戰史)와 리비아(Libya) 전선(戰線)의 무용담(武勇談)이 기술되어있을 뿐이다. 혹시 대학살을 인정하게 된다면, 배,보상(賠,報償)문제가 뒤따를 것을 우려하고 있을런지 모른다. 그리고 1922년Ottoman 제국 멸망(滅亡)이전 사건이긴 하지만, 그 사건에 연루(緣累)되었던 많은 인사들이 대거 신생 터키공화국 창건(創建)에 크게 공헌하였기에 그들의 명예(名譽)를 지켜주기 위하여서라도 터키정부는 아르메니안들이 요구하는 대학살 사과를 무시(無視), 부정(否定)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역사인식(歷史認識-Perceptions of Past) 부족(不足)이거나, 결핍(缺乏)으로 밖에 볼 수 없겠다. Translated and written by Ted Han on April 19, 2015 NavyOfficer86201@gmail.com (718)63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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