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33] 나를 일으켜 세운 스승의 말씀 "절대로 적당주의에 안주 말라"
고등학교 시절 나의 정신적 보디가드였던 친구 이종인과 함께 찍은 사진.
잊을 수 없는 얼굴들
고등학교 시절 지리 과목을 담당하셨던 이광섭 선생님은 나에게 많은 정신적 가르침을 주신 분이다. 전쟁 중 월남하신 선생님은 항상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적당하게 살면 안 된다. 적당주의로 사는 인생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라. 인생의 의미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데 있는 것이다. 성공은 결코 적당주의와 손잡지 않는다."
나에게는 회초리 같은 말씀이었다. 그래 무엇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끝장을 본다는 각오로 덤벼들어야지 대충대충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내가 그동안 무엇 하나 제대로 파고들어 본 적이 있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겨우 영어에 취미를 붙여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잘한다는 말은 듣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그저 영어에 흥미가 있어서 열심히 했을
뿐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래 영어 하나라도 최고가 되자" 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파인트리 클럽을 찾아 본격적인
회화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적당주의에 대한 반성이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동안 해오던 대로 해오던 수준만큼만 노력하면서 더 많은 것을 얻기를 바란다. 인풋(input)은 그대로 두면서 아웃풋(output)이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욕심일 뿐이다.
돌
이켜보면 내 인생에 거저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항상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뛰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나태해지려 할 때마다 선생님의 말씀이 나를
일으켜세운다.
"절대로 적당주의에 안주하지 말라. 적당히 하면 적당한 결과를 얻을 것이요 네 인생도 있으나마나 한 적당한 인생으로 끝날 것이다."
소중한 나의 친구들
나는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긴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그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나름대로 애를 쓰는 편이다. 몸은 비록
미국에 있지만 지금도 나는 연락이 끊긴 한국의 친구를 수소문해서 다시 만나고 옛 친구들과 연결시켜 주는 역할도 종종 하는
편이다.
고3 시절 같은 반이었던 이종인은 나의 정신적 보디가드였던 친구다. 창신동에 살았던 종인은 괴짜로
통했다. 영어 실력이 탁월해 나와 죽이 잘 맞았다. 노력파였던 종인은 한문에도 조예가 깊어 스스로 한시를 지어 줄줄 외우는 또래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이였다.
그러나 수학에는 통 관심이 없었다. 수학 공부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모의고사를 보면 항상 전교 5등 이내에 들었다. 친구들은 종인이가 수학만 조금 더 공부하면 전국 1등도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늘 어울려 다녔지만 종인에게서 나는 가끔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상식이 무척이나 풍부해서 나로서는 거의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종인은 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아직 그런 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고 약을 바짝 올렸다.
자
존심이 강했던 나는 종인이 해박한 지식으로 나를 기죽이거나 놀릴 때는 삐쳐서 이야기도 하지 않고 골을 내곤 했다. 그때 종인은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던 것 같다. 내가 삐쳐서 말을 하지 않으면 슬며시 다가와서 집에 같이 가자면서 나를 토닥거렸다.
종인은 성적이 좋아서 다른 대학도 충분히 갈 수 있는 실력이었지만 "나는 석희 따라서 고려대 간다"면서 고대 영문과에 진학했다. 언제나 나를 배려해 주고 끝까지 우정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참 좋은 친구였다.
종인은 호기심이 많아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를 보면서 나 자신의 적당주의를
나무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식이나 성격이나 여러 면에서 부족했던 나를 친구로서 포기하지 않고 항상 곁에서 동행하고자 했던
종인은 도전 정신이 부족했던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내가 자신감을 키워가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글.사진=올림 출판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34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