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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ight Pound Livelihood (삶의 무게)
04/03/2011
The Eight Pound Livelihood (삶의 무게)
逢 南 韓 泰格 (www.TedHan.com)
미국이 독립한지 17년, 우리에겐 조선조(朝鮮朝) 정조(正祖) 17년인 1793년,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Mass Production)되는 제품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하여, 청(淸)나라 건륭(乾隆)황제(1735~1796 제위 60년 124일)에게 개항(開港)을 요구한 영국 왕 George III세(1760~1820 제위 60년 96일)는 “我國(아국)에는 모든 물건이 자체 생산되기 때문에, 貴國(귀국)의 제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China possesses all things…and has no use for your country’s manufactures.)”라는 치욕적(恥辱的)인 답신을 받게 된다.
당시 유럽과 신생(新生)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차(茶)와 비단 등 사치품(Luxury Goods)을 수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즈음 용어를 빌린다면, 대청(對淸)무역에 있어서 언제나 무역 역조(逆調)현상을 보이고 있었던 터였다. 다시 말하면, 국부(國富)가 계속 중국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大英帝國)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廣州港(광주항) 이외 추가 개항(開港)을 청(淸)이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50년 뒤인 1839년 영국은 무력(武力)을 행사한다. 강력한 함대(艦隊)를 앞세워 아편(阿片)전쟁을 일으킨다. 1839년~1842년, 1856년~1860년 2차에 걸친 아편전쟁은 근대사의 대표적인 무역(貿易)전쟁으로, 청나라의 완패(完敗)로 막(幕)을 내린다.
그로부터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청(淸)은 대국(大國)에서, 종이 호랑이로 전락(轉落), 열강(列强)의 제물(祭物)이 되고, 황제(皇帝)의 신민(臣民)들은 노예에 가까운 값싼 노동자 쿨리(Coolie)가 되어 세계인력수요시장으로 “팔려” 나가게 된다.
미(美)대륙횡단철도건설이 한창이던 1865년~1869년 횡단철도건설노동력의 80%가 이들 쿨리에 의하여 채워졌다.
철도가 완공된 이후, 이민제한법인 중국인 이민제외(除外)법-The Chinese Exclusion Act(*)-이 제정되었던 1882년도의 쿨리 수는 300,000명에 달했다.
당시 이들 중국인들에 대한 적개심(敵愾心)은 하늘을 찌를 듯, 스토아나 레스토랑입구에는, “Chinese, NO, NO, NO”라는 팻말이 붙여졌고, 린취(Lynch)행위도 가해졌다.
미국의 공업화가 한창이었던 19세기 후반, 노동력 착취(搾取)문제가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면서 미국에서도 노동운동이 전개되자, 고용주들은 “말 잘 듣는” 쿨리들을 대체(代替)노동력으로 사용되게 된다.
당시 이들에게 허용되었던 유일한 비즈니스는 손빨래를 하여주는 Laundry업이었다.
전기다리미가 발명되기 훨씬 전인 19세기 후반, 빨래방에서 사용되었던 다리미는 “쇳덩어리”였다.
다리미의 무게는 성인남자가 겨우 들 수 있는 3.6 Kg.에 해당되는 8 Pound에 달하였다.
영어로 Coolie(꿀리)로 불리는 이들 하층노동자들을 중국인들은 한자(漢字)로 苦力이라고 쓰고, 빨래방의 삶을 영어로 The Eight Pound Livelihood라고 묘사하는 것을 보면, 그들보다 100년 후 이민(移民)온 우리에게는 오늘날 미국의 사회여건은 “천국(天國)”이다! 그들에게 감사해 하자!
(*)이 악법(惡法)은 진주만(Pearl Harbor)를 공격한 일본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던 중국을 미국이 동맹국(同盟國)이라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1943년에야 철폐되었고, 그 후 년간 “105명”의 중국인 이민을 받게 된다. 신붓감을 데리고 오지 못해 수많은 중국인들이 평생 혼자 살다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아 MOCA(Museum of Chinese in America)라는 박물관이 최근 건립되었다. 박물관 주소는 Chinatown내 215 Centre St., NYC 10013 이며 Website는 www.mocanyc.org이다.)
이 박물관은 어제 (4월2일) 필자가 오래 전부터 조직의 일원이 되기를 염원하였던 미연방수사국(FBI) 인터뷰를 마치고 나와, 올 봄 들어 첫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며 걷던 중 발견한 곳이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금할 수 없다. 100년 전, 미국인들은 나와 같은 동양인인 중국인들에게 대(代)까지 끊으려 하였었는데……….역사를 알아야 현실을 직시(直視)할 수 있겠다.
Written by Ted Han on April 3, 2011 NavyOfficer86201@yahoo.com (718)63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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