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연말을 맞이하면서 한 해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지 가족, 친지, 직장 동료, 이웃에게 친절하게 베푸는 삶을 살았는 지를 돌아보고, 또 주위에 병으로 고생하거나 추위와 굶주림에 또는 혼자 외롭게 사는 이가 있다면 훈훈한 인정과 따스한 관심을 보일 때다.
옛날 옛적에 개미와 베짱이가 있었다. 개미는 선천적으로 부지런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일했다. 겨울에 먹을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 길에 버려진 빵 부스러기, 사과조각, 건포도 할 것 없이 영차 영차 하면서 등에 지고 끌고 메고 집으로 나른다.
늘 열심히 힘들게 일하는 개미의 낙(樂)이 있다면 크고 잘 정리된 창고의 선반에 자신이 열심히 모은 온갖 식량의 수를 세는 것이다. 한편 베짱이는 햇빛이 좋은 여름날 바이올린을 켜면서 노래를 부르며 편하게 살아간다.
노랫소리가 시끄러워 계산을 잘할 수 없자 개미는 베짱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지만 베짱이는 오히려 하늘은 푸르고 날씨는 좋은데 나와서 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자고 개미를 초청한다. 개미는 베짱이에게 월동준비를 했냐고 묻지만 워낙 낙천적인 베짱이는 개미의 걱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름 내내 바이올린을 켜며 노래만 하는데….
여름이 가고 서늘한 날씨가 되면서 개미의 발걸음은 바빠지고, 첫눈이 오자 따뜻한 실내에서 풍성한 음식들을 바라보면서 즐거운 생각에 빠진 개미가 갑자기 늘 들려오던 베짱이의 소리가 안 들려오는 것을 의식하고는 현관문을 열어 본다. 그러자 눈에 덮인 초라한 베짱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원작 이솝우화에서는 평소에 게으르고 열심히 일을 안 하던 베짱이가 겨울에 얼어 죽거나 개미에게 구차하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우화의 교훈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만, 게으른 사람은 불행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룰리 그레이의 작품에서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깜짝 놀란 개미가 베짱이를 집안에 들여다 침대에 누인다. 얼마 후 눈을 뜬 베짱이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자 원기가 회복된 베짱이는 개미와 함께 개미의 집에서 지낸다.
그 동안 겨울식량을 모으느라 힘들여 일하고, 또 모아진 식량의 개수를 세느라 온 시간을 보냈던 개미에게 베짱이는 바이올린을 켜면서 노래를 하며 개미에게 음악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둘은 함께 노래한다. 개미는 베짱이의 노래 솜씨를 베짱이는 개미의 산수 실력을 칭찬하며 둘은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한다는 내용이다.
올해 출판된 룰리 그레이의 작품은 이탈리아 사람인 줄리아노 페리가 색연필과 수채화 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들로 페이지가 꽉 차게 개미의 집안을 묘사하고 있다. 선반 가득 진열되어 있는 맛있고 건강에 좋은 식량들을 두 손을 허리에 대고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는 개미의 얼굴 표정, 또 눈에 덮인 베짱이를 바라보는 개미의 놀란 표정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21세기형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서로 성격이나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의 장점을 키워주면서 단점을 보완하여 조화를 이루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일만 하던 개미가 베짱이에게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을 배운 것처럼, 고국을 떠나 미국에 와서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하고 결혼하여 자녀 낳아 키우느라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이민 1세들도 때로는 잠시 멈추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휴식과 취미생활도 허락하면 더욱 더 윤택한 생활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개미가 베짱이에게 베푼 것처럼 주위에 불우하고 소외된 이웃이 있다면 그들에게 따스한 손길도 허락하는 훈훈한 12월이 되었으면 한다.
송온경 도서 미디어교사 2011년 1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