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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人民軍의 正體를 파헤친다. 副題: 北京과 平壤의 歷史的 連繫와 連帶
09/18/2016
Posted by New York 한 태격 (상학과 65) Bt_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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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501 -

6.25. 人民軍의 正體를 파헤친다.

副題: 北京과 平壤의 歷史的 連繫와 連帶

韓 泰格(www.TedHan.com)

BC 3000년 경 이집트에서Pyramid를 쌓아 올리고, BC 776년 그리스에서 첫 올림픽(Olympiad)을 개회하였고, BC 753년 로마제국이 건국되었고… AD 1453년 오토만제국이 Constantinople(현재 Istanbul)을 함락(陷落) 1,000년 제국 동로마를 멸망(滅亡)시켰고, 1492 Cristobal Columbus가 신대륙을 발견하는 등 현재까지 인류역사의 물길을 뒤바꾸어 넣은 해를 세어보면 50 개 정도 된다. 마찬가지로 68년 전, 1948 8 15일 대한민국 건국(建國) , 역사를 바꾼 날이 열 댓 된다. 그 가운데 6.25.가 있고 9.15.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6.25.1950625일 동란발발일(動亂勃發日) 이며 9.15. 6.25.로 부터 2개월 20일 후, 한국전참전UN군이 적()의 배후(背後)인 한반도의 허리, 서해안 중부에 위치한 인천(仁川)를 공격, 13일 만에 수도(首都)서울을 탈환(脫還), 전세(戰勢)를 역전(逆轉)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던, 대한민국의 생존(生存)과 존속(存續)에 결정적이고도 운명적인 날이었다. 이를 그린 영화, 인천상륙작전 (영어 명 Operation Chromite)이 최근 뉴욕에서도 절찬리에 상연되었다. 이 영화 대사(臺辭) 중 적군(敵軍)인 인민군 18 사단(師團)이 등장한다. 18사단의 전신(前身)은 모택동(毛澤東)휘하의 중국공산당 인민해방군 화북(華北)사단 소속이다. 이 사단 뿐만 아니다…6.25.초기부터6 5천 명에 달하는 중국공산당 인민해방군소속 조선족이 조선의용군 (朝鮮義勇軍)’이라는 기치(旗幟)아래 그들이 이야기하는 조선전쟁6.25.에 참전하였다. 1951 14일 후퇴의 동기가 되었던 중공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 전략에 따른 중공군 직접 참전개입때가 아니라 이미 6.25.발상(發想)단계부터 선봉대(先峰隊)6 28일 서울을 점령했던 주력부대(主力部隊)   모택동 휘하에서 길게는 10여 년 이상, 짧게는 수 년동안 항일(抗日)투쟁이나 대()장개석(蔣介石) 국민당 군대를 상대하여 전쟁하였던 전투경력이 풍부한 조선족(朝鮮族)출신 군인들이다.

여기서 당시 동북아(東北亞) 상황을 조감(鳥瞰)할 필요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당시 한반도는 일본이 세계 제 2 차 대전에 항복한 1945 8 15일부터 3 년 간, ()은 미국이, ()은 소련의 통치를 받았다. 3년 후, 8월과 9월 서울과 평양에 각기 독립 정부가 수립(樹立)된다. 강건너 한반도 인접국인 중국은 모택동의 인민해방군이 국민당 장개석군을 대만(臺灣-Taiwan)으로 몰아내고 1949 10 1일 북경(北京)에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을 수립한다. 

대륙통일을 달성한 모택동에게 이제 군()은 정리되어야 할 존재가 되었다. 정군(整軍)또는 숙군(肅軍)을 해야할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김일성은 모택동에게  밀사(密使)를 보내, 정리될 군을 파병(派兵)하여 줄 것을 요청한다. 김일성은 모택동이 넘겨 준 이들 조선족 중화인민해방군 소속 병사에게 인민복을 갈아입혀 남침(南侵)을 결행(決行) 하였던 것이다. 실제 북에서 징집(徵集)된 병력은 전투경험이 전무(全無)하여 오합지졸(烏合之卒), 전투를 수행할 처지가 아니었다. 1950 6월은 1948 8월부터 22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6.25.의 배후에는 초기부터 모택동의 중화인민해방군이 도사리고 있었다.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민족해방이라고 주장하는 전쟁을 수행하였던 실제 전투(戰鬪)병력의 주역(主役)들은 타국(他國)인 중국 만주출신들로, 항일투쟁시 전투경험을 쌓았던 모택동 공산당 휘하의 중화인민해방군소속  6 5천명의 조선족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김일성은 모택동이라는 외세(外勢)’를 등에 엎고 6.25.를 감행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족은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동족(同族)일 뿐, 당시 국적도 소속도 엄연한 중국인이었고 중화인민해방군이었다.

이제 급기야 가지고 있었던 의문이 풀린다. 첫째는 외세라는 것과 둘째는 풍부한 전투경험을 갖춘 병사였기에 2개월도 되지 않아 낙동강전선까지 파죽지세로 몰아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껏 우리는 6.25.동란의 원인, 참상 그리고 참전하였던 UN군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으나, 적군의 구성원과 그 배후에 대하여 정보가 없었다.

작금, 한반도에 북핵(北核)의 위협이 크게 드리워져 일촉즉발(一觸即發)의 상황에서 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즉 관건(關鍵)을 쥐고 있는 중국과 국제사회의 이단아(異端兒) 북한의 역사적 연계(連繫), 연대(連帶)에 대하여 보다 심층(深層)적 연구가 필요할 때다.

참고: 뉴욕일보 칼럼: 1. 陳中 詩 한 篇 副題: 美軍 兵士 戰線 9個月 (2013. 11.13.) 2. 强化된 對北制裁法案發議 (2015.7.6.) 3. 歷史盜用, 歷史捏造, 歷史歪曲 副題: 中華人民共和國 戰勝節 70週年 列兵式을 觀覽하고…(2015.9.8.) 4. 두 분이 계셨기에 大韓民國이 存在한다. 副題: 李承晩, 朴正熙 兩 대통령 Times Square 弘報, 廣考揭示 (2015.11.30.) 5. 對北制裁 왜 效驗이 없나? 副題: 中國이 關鍵 (2016.1.11.) 6. 같은 核, 다른 解法  副題: 實益을 찾는 Iran, 極端으로 치닫는 北韓 (2016.1. 26.) 7. 朴槿惠大統領 萬歲 副題: 開城工團中斷措置를 支持하면서..(2016.2.16.) 8. 念願하면 效驗있다. 副題: 중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6.5.2.) 9. 2 6.25 對備해야 할 때! 副題: 現 危機狀況을 克服할 適任者는? *독립운동가 一松 김동삼선생의 손자 김중생 옹 저서 조선의용군의 밀입국과 6.25.전쟁 (명지출판사 2000.7.1.)

 

Written by Ted Han on September 18, 2016  NavyOfficer86201@gmail.com  (718)63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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