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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1學年 8班 副題: “50年 만에 얼굴 보자.”
09/10/2017
風向計 第 530 話
우리는 언제나 1學年 8班
副題: “50年 만에 얼굴 보자.”
韓 泰格(www.TedHan.com)
오늘날을 Ubiquitous시대라고 한다. 과학의 발전으로 시공(時空)을 뛰어넣는 시대를 말한다. 사전은Ubiquitous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다. “present, or seeming to be present, everywhere at the same time 동시에 어디에서나 존재하거나 존재할 것처럼 느껴지는……”.서울과 런던과 뉴욕과 로스 안젤레스가 동(同)시간에 교신, 교통할 수 있는, ‘시간이 초월(超越)되는’ 시대가 되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공상(空想)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시대가 당연한 것인 것처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소위 SNS라는 Social Media를 통하여 시공을 떠나 현대인들은 Group으로 묶어 놓고 있다. 뜻을 같이하는 동지(同志)나 취미를 같이하는 동호인(同好人) Group으로…. Social Media를 조선시대 어휘를 빌린다면 Off-Line의 ‘장터’가 되겠고 50~70년대의 다방(茶房)이 되겠다. 만남의 장소다. 화장(化粧)을 짙게한 마담만 없을 뿐이다. 그 Social Media에서 뜻을 같이하여 왔던 고교동창으로 부터 3~4주 전 연락이 왔다. 그것도 세상사람들이 다들여다보고있는 Facebook Comment창(窓)을 통하여 “태격가 나 딸네 집 다니러 와 있어. 딸네는 Albany근처라네.” “맨해튼으로 내려오는 날 내게 전화주게나. 반세기만에 얼굴보자. 내 Cell Number는 (917)502-1562야” 그는 필자가 ‘세상을…, 유럽을…, 뉴욕을… 배달하는 뉴요커’이름으로 유럽의 소식이나 미국의 News 또는 풍향계 Column을 올리면 올리기가 무섭게 Like를 해 주거나 Comment를 달어 용기내어 올리는 글에 ‘힘을 실어주는’ 동창으로, 고교시절 50년 전, 60년대보다 최근 Social Media상을 통하여 더 많은 대화와 공감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있었던 차(次)였다. 생각을 같이하는 동창이며 ‘같은 뜻을 가졌다는 사실을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아니하고 소신껏 만천하에 견해를 같이하여 주는 몇 안되는 동지 중의 한 명이다! 이제나 저제나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차, 7일(목) 서울 한국전화번호 (82)105238-1xxx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동창이자 동지의 반가운 전화였다. “그동안 잘 지냈니? 언제 귀국하니?” “내주 말..” “가기 전에 보야지” “보긴? 딸아이가 맨해튼 관광시켜줘서 구경 잘했단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다가 전화하려니 껄끄럽기도 해서 망설렸어” “무슨 소리야! 내일 내려와.. 얼마만이냐!” “그럴까? 지난 번 딸아이와 갔을 때 길을 잃는 바람에7시 기차를 놓쳐 다음 기차를 탔는데 8:55 가차가 있더라. Philadelphia역에서” “Penn Station이겠지. Penn Station에서 한인타운까지 두 Block밖에 되지 않아. 이 남자가 뉴욕 마당발 아니니! 내가 딸아이와 같이 가지 않았을 멋진 곳으로 모실께” “그래 그럼 내일3시에 도착하는 기차로 내려갈께”
그래서 2017년 9월 8일(토) 뉴욕 맨해튼 34가 Penn Station앞에서 1965년 2월 옛 경희궁 궁터에 자리했던 고교 교정(校庭)을 떠난 후 처음 만났다. 둘이는 3학년이 되면서 하나는 이과(理科)반으로, 다른 하나는 문과(文科) 반으로 지원하여 그는 육사(陸士)근처 명문 공대(工大)로 입학하였고 필자는 문안 근처 상대(商大)로 진학하는 바람에 서로 교류할 기회가 없었다.
“모습이 그대로네 그려.” “늙었구나”로 시작된 대화는 시공을 뛰어넘어 서울 신문로(新門路)로 날아갔다. 차는 주말 Traffic을 뚫고 맨해튼의 Landmark인 Brooklyn Bridge를 넘어 맨해턴 마천루(摩天樓)가 한 눈으로 건너다보이는 Dumbo로 향하고 있었다. 역사를 부(副)전공!!!한 필자가 “이 다리가 127년 전에 독일출신John Augustus Roebling에 의하여 1883년 세워졌다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토목(土木)을 전공하고 박통(朴統)때 건설부(建設部)와 현대(現代)건설에서 근무하였던 그는 “와 그 옛날에! Suspension(懸垂橋)다리*를…” 하며 그 방면으로는 무식하기 이를 데없는 문과출신에게 알아듣지도 못하는 용어로, 물고기가 물을 만난듯 Suspension다리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차는 퇴근물결을 따라 Dumbo에 도착했다. 둘이는 인생을 방금 시작하는 신랑, 신부들 사이에 끼어 흘러간 50년의 세월을 반추(反鄒)하기 시작했다. “ROTC 7기로 제대한 후 1972년 건설부로 들어갔어. 우리팀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삼천분의 일 지도(地圖)로 제작했었네. 그 전까지는 오만분의 일 지도 밖에 없었어. 정확한 지도가 있어야 국토를 개발할 것 아니니…당시는 각부서에 박통(朴統)이 내려보내는 메모 담당자가 있었단다. 건설부에선 박통의 메모를 내가 담당했어. 박통이 지방시찰하시다가 그려서 내려보내는 메모에 많은 공무원들이 혀를 찼을 정도였어! 그 정확한 묘사에 그 그림에…여러 곳 공단(工團)을 설계하라는데 담당자인 나도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었지. 박통아니었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 만들어질 수 없었어. 그 땐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자기 일수였고, 데이트 약속해 놓곤 3~4시간 기달리게 하는 건 다반사(茶飯事)였어. 그렇게 만들어 놓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일조(一助)도 하지 않은 자들이 집권하여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에 내가 분노하는 것이지. 너는 은행에 있었지만 나는 국내와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닥쳤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게야!” 그는 결코 칠십대가 아니었다. 그는 흘러가는 East River를 바라보며 30대 건설의 역군(役軍)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들의 그 열정(熱情) 그 정열(情熱)이 있었기에 오늘 대한민국이 G20반열(班列)에 오를 수 있었음을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Dumbo를 떠나기 전 중명 사진을 남겨놓기 위해 그는 뉴욕으로 관광온듯한 두 한국여대생들에게 ‘두 칠십대 노인’들의 사진을 부탁하면서 “너희들 이 분이 누군지 아니? 이 분으로 말하잘것 같으면 말야, 그 옛날 서울고등학교 입시(入試)에서 8등으로 입학하여 우리 반8반, 반장(班長)하셨던 분이란다!” “야야! 사진찍어 달라고 부탁하면 됐지 무슨 쓰잘데 없는 소리를 하니?”
반장했던 문과출신은 대한민국건설에 혁혁(赫赫)한 공을 세운 동갑내기 이과출신 동기동창에게 죄스러움을 금(禁)할 수 없었다!
그가 건설현장을 뛰고 있을 때 ‘펜대만 굴렸던’ 문과출신은 그 송구스러움!!!을 속죄(贖罪)하는 뜻으로 한인타운의 대표주소인 1250 Broadway건물 39층에 있는 ‘거나한’ 레스토랑으로 모시기로 하였다. 석양(夕陽)으로 물든 맨해튼의 야경(夜景)은 둘의 우정(友情)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시계는 8시 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기차가 북쪽으로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누군가의 입에서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가 탄 AMTRAK기차는 정시(定時)에Albany-Rensselaer를 향해 굴러가고 있었다.
*현수교(懸垂橋)는 케이블에 의해 지지되는 형식의 다리로 케이블에 의해 전달되는 교량의 하중(荷重)을 다른 고정체에 연결시켜 지지하는 타정식과 교량자신의 균형에 의해서 지지하는 자정식이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교량으로는 광안대교, 남해대교, 영종대교 등이 있다.
關聯칼럼: 뉴욕일보 風向計 第 516 話 2017. 6. 1. 자 칼럼 50年 前 母校恩師를 뉴욕으로 모시고 다시 듣는 英語授業
Written by Ted Han on September 10, 2017 NavyOfficer86201@gmail.com (516)773-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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