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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 선생 장례식, 학교장(學校葬)이었어야! (교우회보에서)
06/23/2011
Posted by Los Angeles 김성철 (경영 58) Bt_email
   아래글은 교우회회보에 실린 그대로입니다.
 
 
[여론, 칼럼] 2011-06-20
정 철
삼성제일병원 홍보 팀장
 
 
지난 6월 7일 우리 곁을 떠난 김준엽 선생은 언제나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고 흠결 없이 아름답게 생을 마감한 우리 시대의 위인이었다. 일제하 학병으로 끌려갔을 때 그는 굴종의 삶을 사는 대신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였다. 광복군에 합류하기 위해 6천리 길 대장정을 했던 그에게서 우리는 용기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역사의 소명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의 결단과 헌신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갖는지에 대해 거듭 반추하게 된다. 모교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정부의 강압에 맞섰던 선생의 행동은 언제 들어도 감동을 자아낸다.

작고한 날부터 영결식이 끝난 다음날까지 주요 일간지마다 선생의 삶과 장례식 소식을 자세히 보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 일간지는 모교 4학년 재학생 한 명이 선생의 회고록을 읽고 받은 감동으로 선생을 찾아 뵙고 장례식장 한켠에서 짬짬이 빈소일을 돕고 있다는 사연을 보도하였다.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교우·교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인들과 재학생들에게까지 선생의 죽음은 깊은 슬픔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추모의 분위기에 비추어 보면 김준엽 선생의 장례식 절차는 허전하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안암동 고려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는 일반인들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정부에서는 사회장을 제안하였는데, 유족들이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가족장으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어떤 관직 제안도 물리쳤던 선생의 삶을 생각하면 사회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준엽 선생의 장례를 고려대학교의 학교장(學校葬)으로 치를 수는 없었을까? 선생은 회고록에서 광복 직후 김구 선생을 따라 정계에 입문하지 않고 학자의 삶을 선택한 것, 그것도 민족의 대학인 고려대학교 교수가 된 것을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광복군이 되었던 것만큼 자신의 생애에서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말하였다. 고려대학교와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개인으로서의 일과 명예를 버린 선생이 아닌가? 고려대학교에 대한 선생의 깊은 애정은 그의 유족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고려대학교 재단이나 학교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유족들을 설득했다면 학교장으로 선생의 장례를 지내는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학교장의 선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비록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지만 1987년 현민 유진오 선생의 빈소가 설치된 적이 있으며, 1995년 김상협 선생의 장례를 학교장으로 치른 적이 있다. 1968년에는 모교 교가의 작사가인 조지훈 선생의 장례식이 학교 운동장에서 거행되었다. 김준엽 선생은 모교 총장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조지훈 선생처럼 지조 있는 선비적 삶으로서 우리 사회의 사표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학교장으로 예우를 갖춰 보내드렸어야 옳았다.

김준엽 선생이 권력의 손길을 뿌리친 이유는 그 권력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인의 세력이 지배할 때 군자는 물러나 바른 도를 지킨다. 그 길은 고귀하나 외롭고 쓸쓸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를 학교장으로 장사지내지 못하고 쓸쓸하게 떠나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준엽 선생의 마지막 가는 길, 교우회장 자리마저 공석인 상태여서 제자로서의 도리조차 변변히 하지 못한 우리 자신이 부끄럽고 슬프다. <보건행정85·본보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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