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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Kyung Joo's BookLove(자기주도학습(Self-Directed Learning)을 실천한 조셉 와튼(Joseph Wharton)과 Wharton School)
11/01/2011
Posted by New York 송 온경 (교육학과 77) Bt_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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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rton Mansion in Basto Village

 

뉴저지 남부에 가면 와튼 스테이트 포리스트(Wharton State Forest)라는 곳이 있고   그 안에 18세기에 세워진 역사적인 밧스토 마을 (Historic Batsto Village)의 자취가  남아 있다.  이 곳에는 유럽에서 이주해 온 정착민들이 오기 전까지 레나피 인디안들이 수천년을 살아왔으며, 마을사람들이 밧스토 강 유역에서 널리발견된 소철광(bog ore)을 용광로에 녹여 무쇠 솥과 남비 등 가정 용품으로부터  미독립전쟁에 필요한 대포의 포탄과 마차의 바퀴 테두리에 이르기까지  군수용품들도 만들었다고 한다.   100년이 지나 무쇠산업이 쇠퇴하자 강에서 퍼 온 모래속의 규사를 녹인 것을 긴 대롱으로 불어 만든 각종 유리병이나 램프커버, 유리창을 만드는 유리산업이 활기를 띄웠지만 오래가지 않아서 유리산업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1876년에 필라델피아 출신의 기업가인 조셉 와튼이 ‘소나무가 우거진 황폐한 땅(Pine Barrens)’ 이라고 불리우던 이 곳에 9만 6천 에이커의 땅을 사들였고 와튼의 덕에 그 땅은 생태계가100여년간 그대로 보존된 채 오늘날 생태학의 연구에 이바지하고 있다. 1909년 와튼이 사망한 후 그가  이곳에 소유했던 농지와 삼림등은 뉴저지주에 의해 그의 이름을 따서 와튼 스테이트 포리스트라 명명되었다.  밧스토 마을에 가면 와튼이 생전에  1년에 몇 주씩 머물렀던 맨션의 투어를 가이드로부터 받을 수 있고,  방문객들은 얼음창고, 땔나무창고, 마굿간, 마차차고, 정미소, 푸줏간, 외양간, 마굿간, 대장간, 옥수수창고, 물방앗간, 가게 및 우체국, 잉어호수, 철용광로, 유리공장, 교회 등의 부속 건물들을 자유로이 다니며, 셀폰으로 전화를 걸어 각 건물에 대한 녹음안내 방송을 들을 수 있다.    

 

한 세기전 오늘날의빌게이츠와같이재력이많고자선사업에 힘쓴 조셉와튼은어떤사람이었을까?  필라델피아에서 유력한 퀘이커부모님 슬하에서 태어난 와튼은 일찍부터 가정교사들로부터 학문을 익혔으나 퀘이커의 전통에 따라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19살에 회계사 밑에서 2년간 조수로 일하던 와튼은 비지지스와  회계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았으며 농업과 화학에도 관심이 많아 실험실에서 연구 조수로 열심히 일을 익혔다.  그는 아연, 주석, 철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타고난 비지니스 마인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으로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광산비지니스에 투자하여 아연, 주석들을 채굴, 정련, 하고 다른 금속과 합금하였으며, 베들레헴 철강회사의 대주주가 되는 등 당대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그는 토마스 에디슨, 앤드류 카아네기 등 당대에 각계의 유력한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했으며, 그들을 초대하여 식탁에 둘러앉아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또 한가지 와튼이 남긴 업적은 펜실베니아 대학에 그 유명한 와튼 스쿨을 세운 것이다.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그가 여러가지 광산계통 사업들을 벌이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회사들을 전문적으로 경영할 CEO와 매니져들도 의사나 변호사처럼 대학과 대학원에서 엄격한 전문커리큘럼을 거쳐 배출해야 하는  전문직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881년에 비지니스 전문학부를 세워달라는 와튼의 제의를 받은 펜실베니아대학측에서는 난감했다.  그 당시 비지니스, 즉 상업은 도제제도로 배우는 것이 전부였으며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으로 인식하기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감지한 와튼의 선견지명을 이해하고 기부금을 수락한 대학측에서는 서둘러 전문교수를 채용하고, 비지니스 커리큘럼을 짜게하였으며, 교과서를 만드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미국 최초의 비지니스스쿨을 대학안에 설립하고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120개의 새로운 비지니스 스쿨들이 설립되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1000여개의 대학, 대학원에 속한 비지니스 프로그램들에서 매년30만명의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다.  와튼 스쿨은 전세계의 비지니스쿨의 선구자노릇을 담당한 것이다. 조셉 와튼의 앞을 내다볼 줄 아는 혁신적인 정신이 깃들어 있는 그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오늘날도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그들에게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지 묻고 싶다.  자신의 명예와 출세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이 세계와 인류에 공헌하기 위해서인지.  

 

조셉 와튼은 평생 술 담배를 멀리했으며, 70이 넘은 나이에도 스케이트와 카누 등을 즐겼고 어릴 때부터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혁신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즉, 남이 하라고 해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 분야를 파악하고 그 분야에 대해 주도적으로 배우고  경험을 쌓아 열정적으로 사업을 펼쳐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그러한 삶을 영위것은 그할 수 있었던  때 그 때 가정교사,형제, 친구, 사업파트너 등의 인적자원과 남들이 알아보지 못한 광물등의 천연자원 등을 잘 활용한 결과였던 것이다.   21세기의 지도자가 되려는 우리 자녀들에게 조셉 와튼은 좋은 롤 모델이 될 것이다.

 

송온경 도서미디어교사 2011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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