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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전쟁(una guerra estupida) -Chaco War-
07/26/2012
어리석은 전쟁(una guerra estupida)
-Chaco War-
逢 南 韓 泰 格(www.TedHan.com)
7월27일은 1950년 6월25일에 시작된 동족상잔(同族相殘) “한국전쟁”이 3년 1개월 2일만에 총성(銃聲)이 멈춘 날이다. 이제 정전(停戰)이 된 지도 59년이 경과하였다.
민족의 비극 6.25 동란의 민족사적 “평가”는 먼 훗날로 미루기로 하고, 한반도에서 수직으로 터널을 뚫으면 반대편에 나타날 Bolivia와 Paraguay 두 나라가 한반도의 6.25보다 꼭 18년 전(前) “2년 11개월 3주” (1932.6.15. ~ 1935.6.12)동안 치루어 졌던 Chaco전쟁을 들여다 보기로 한다.
Bolivia하면, 최근 MB의 백형(伯兄)되시는 이상득(李相得) 전(前)의원(77)이 자원외교를 위하여 노구(老軀)를 무릅쓰고 비행시간만 30여 시간이 넘는 곳을 6차례나 인디오 출신 Evo Morales 대통령을 찾아 나섰던 “자원부국(資源富國)”으로 알려진 나라이고, Paraguay라면 World Cup “Mobile Phone” 응원녀(應援女)로 전세계 호남(豪男)들을 뜨겁게 달구었던, 바로 그 남미 “글레머” 아가씨의 나라로 쉽게 연상되지만,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에는 19세기 말부터 양국간 영토분쟁지역으로 잦은 마찰이 있어 왔던 Gran Chaco (면적 64만 평방 키로, 남북한 면적의 3배)가 유전(油田)지역일 것이라는 “판단”과 Paraguay강(江)을 이용하여 대양(大洋)으로의 수로(水路, Waterway)가 절실하게 필요하였던 Bolivia의 욕구(慾求)가 맞물려, 양측 총(總) 10만 명이 넘는 전사자(戰死者)를 낳은 20세기 미주대륙에서 발발하였던 가장 치열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들 두 나라는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빈국(貧國)에 속하며, 19세기에는 인접(隣接)국가들 즉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의 전쟁에서 패배(敗北)하여 국토를 상실(喪失), 바다 잃은 내륙(Landlocked)국가로 전락, 대양(大洋)을 향한 열망이 하늘을 찌르는 듯 하다는 점 그리고 건국의 역사적 배경과 국어(國語)가 동일하다는 점이다.
먼 나라에서 보면, 형제국가처럼 보이는 이들 두 나라가 피비린내 나는 3년간의 전쟁을 수행한 데는 양측 모두 엄청난 “판단착오”과 자원을 확보하려는 외국세력(外國勢力)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1930년대 초 남미대륙을 남북으로 종단(縱斷)하는 안데스 산맥일대에서 오일(Oil)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안데스 산맥의 기슭에 위치한 광활한 Gran Chaco지역 역시 지질학적으로 분명 유전(油田)지대일 것이라는 세계적인 Major(석유재벌)들의 “예측(豫測)”이 두 나라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 이미 Rockefeller가 대주주인 Standard Oil(현재 ExxonMobil의 전신)은 Bolivia 동부 Villa Montes지역에서 석유를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Bolivia정부와 밀착(密着)되어 있었고, 네덜란드 계 Royal Dutch Shell Oil은 Paraguay정부의 배후(背後)를 조정하고 있었다..
1930년 초 Paraguay는 Bolivia인구의 1/3 밖에 되지 않았다. (880,000 대 2,150,000).
전쟁수행방식은 Bolivia군(軍)은 정통적인 전략을 고수하고 있었던 반면, Paraguay군은 게릴라전략을 채택하고 있었다.
전쟁 초, Paraguay군은 비(非)전투원을 포함하여 4,026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군인들은 거의
백인과, 백인, 원주민 혼혈인 Mestizos로 구성되어 있었던 반면, Bolivia군은 보병(步兵)의 90%는 안데스 산맥 고(高)지대에 살고 있는 인디오를 포함하여 Gran Chaco와 연고(緣故)가 없어 전쟁에 냉담한(apathetic) 장정(壯丁)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장교들은 스페인이나 유럽출신이민자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전군을 지휘하는 참모총장은 세계 제 1차 대전참전 독일군 출신 Hans Kundt장군이었다. Bolivia의 군대는 6만에 달하였으나, 2/3 정도는 지형관계로 전장(戰場)터에 동원되지 못했다. 그러나, Paraguay는 더 이상 주변국가에 패배하여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벼락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버스는 군 수송차량으로 수용되었고, 결혼반지와 보석 등 대외결재수단이 되는 귀금속은 무기를 구입하는데 쾌척(快擲)되었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17살 되는 소년들까지 징집되었고, 경찰관들은 유니폼을 갈아 입고 전선(戰線)으로 향했다. Bolivia는 군수물자를 고도(高度) 4,000m가 넘는 안데스 산맥을 가로 질러, 동서(東西) 800km에 달하는 거리를 수송하는데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던 반면, Paraguay는 Paraguay강을 이용, 수로(水路)로 무기와 군수품을 용이(容易)하게 운반할 수 있었다.
양국이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기 때문에, 해상으로 수송되는 무기는 바다가 있는 인접국의 승인이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바다가 있는 Argentina가 Paraguay를 지원, 참전하자, 전쟁초반 Bolivia의 기세는 꺾이기 시작, 결국 전쟁은 Paraguay의 승리로 끝났다.
아이로니칼하게도, 종전(終戰) 후, 땅을 파보니 기름 한 방울 생산되지 않는 불모지로 판명되었다. 무고(無告)한 생명들만 희생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총탄에 의한 죽음보다는 갈증(渴症)과 말라리아 등 괴질에 의해 희생자가 더 많았다.
특별한 대의명분(大義名分)도 없고, 양국간 이렇다 할 증오심도 없었던 글자 그대로 “대리(代理)전쟁”의 양상을 띈 전쟁이었던 것이다. 오죽하였으면, 휴전이 발표되자, 양국간 병사들이 서로
부둥켜 안았을까? 수통(水桶)의 물을 건네어 주면서……
Chaco전쟁을 “어리석은 전쟁(una guerra estupida)”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은 위정자들의 광기(狂氣)나, 판단착오(錯誤) 또는 오류(誤謬)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세계 제 2차 대전이 그러하였고, 6.25가 그러하였고, Iraq War가 그랬던 것처럼
……
그러나 두 나라의 국경을 확정 짓는 양국간 조약은 종전된 지 74년이 경과된 2009년 4월28일이 되어서야 Argentina Buenos Aires에서 체결되었다.
국토와 “바다로 향하는 수로”를 잃은 Bolivia국민들의 엄청난 상흔(傷痕)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가 한반도(韓半島)와 상관도 없는 지구 저편의 역사를 거론하는 이유는 역사는 어느 곳에서라도 반복(反復)될 수 있기 때문이다. (History repeats itself.)
(註) 1.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피 흘려 지킨 Paraguay Chaco지역을 지주(地主)인
아르헨티나 Cansado Hermanos, S.A.사가 1,500.000 에이커(스위스보다 넓은 지역)에
달하는 땅을 2000년 문선명(文鮮明)씨가 교주로 있는 통일교 (Unification Church)재단에 매각하였고 George W. Bush 전 대통령도 2006년 10월 Chaco지역의 100,000 에이커의 땅을 구입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2. 보다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독자들께서는 Google에서 Chaco War: Anglo-Dutch Resource Grab(資源爭奪戰)을 참고하시고, YouTube를 통하여 Chaco War에 참전한 병사들의 참상(慘狀)을 보실 수 있습니다.
Written by Ted Han on July 29, 2012 NavyOfficer86201@yahoo.com (718)63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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