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mson 광장북남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교우들 간에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입니다.
지역별 교우회에서 게시물을 등록하면 자동으로 리스팅됩니다. 인증된 회원에게만 읽기, 쓰기 권한을 허용합니다. Only for Korea University Alumnus
1453년 5월29일
06/09/2013
1453년 5월 29일
逢南 韓 泰格(www.TedHan.com)
요즈음 외신(外信)의 머리기사는 터키 이스탄불(Istanbul)에서 발생하고 있는 소요(騷擾)사태다.
이스탄불의 중심지역인 Gezi 공원과 Taksim 광장의 재개발(再開發)을 추진하고 있는 중앙정부의 계획에 반발한 시민들이 연일 데모를 벌리고 있어 터키의 정국(政局)을 뒤흔들고 있고, 급기야는 터키가 가입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유럽연합 EU까지 앙카라 중앙정부의 데모 대 무력사용을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에게 터키(Turkey)라고 하면 6.25동란 참전국이고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파견하여 나라를 구해 주었고 참전국가가운데 미국을 제외하곤 가장 늦게까지 군을 주둔시켜 주었던, 피를 나눈 혈맹(血盟)의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재개발을 둘러 싼 소요사태가 곧 진정되기를 기원하면서 작금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터키(Turkey)와 경주(慶州)와도 자매결연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도시 재개발의 진통(陳痛)을 현명하게 극복(克服)한 한국인의 입장에서 성장통(Growing Pains)을 겪고 있는 이스탄불시가 세계사(世界史)적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아 보는 것도 매우 흥미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터키인의 조상은 삼국시대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수(隋 581~618), 당(唐 618~907)나라 당시 중원(中原)의 북방과 한반도의 북방민족인 말갈인(靺鞨人)들의 거주지역 서쪽에 살고 있었던 돌골족(突厥族)의 후예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조상은 우리와 같은 동양인인 것이다.
그 후예들이 중앙아시아의 대회로(大回廊, Corridor)를 따라 지금의 소아시아 (Minor Asia)까지 민족의 이동이 수백 년간 이루어 진다.
이들 터키민족 중 Osman Bey부족이 중심이 되어 1299년 북서 Anatolia지역(지금의 터키 북서부)에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Ottoman국을 건국한다. 이 Ottoman국의 7대 Sultan인 Mehmed Fatih (Mehmed The Conqueror in Turkish)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신무기(新武器)인 길이 29 Feet, 구경 26 Inch되는 Cannon(대포) 60문(門)앞세워 1453년 5월29일 난공불락 (難攻不落) 천년성(千年城)인 동로마제국의 본산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함락(陷落)시킴으로써 향후 세계사의 향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정복자 Sultan Mehmed II는 Constantinople을 Istanbul로 개명하여 버린다.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과 그리스가 Ottoman제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물론 유럽대륙에 이슬람교가 전파되는 계기가 된다.
이로써 기독교를 공인(公認)하여 첫 기독교신자 황제(皇帝)가 된 Constantine대제(大帝)를 기리기 위해 337년 명명된 동로마제국의 수도 Constantinople이 1,000 여 년의 영화(榮華)를 뒤로하고 멸망(滅亡)하였을 뿐 아니라, 이천 년 동안 동(東)과 서(西), 중국과 로마를 이었던 무역로(貿易路)
Silk Road가 폐쇄(閉鎖)되고 만다.
따라서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등 당시 해양세력들은 동쪽으로 가는 육로와 해상로가 막히자, 서쪽으로 항로를 개척하기에 이른다(Quest for Asia). 39년 후, 동방(東方)을 찾아 나섰던 Christopher Columbus가 1492년 10월12일 지금의 The Bahamas군도 가운데 San Salvador섬을 발견한다. 신세계(新世界, New World)가 전개, 인류역사의 새로운 장(章 Chapter)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1492년은 1453년이 만들어 낸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최근까지 1492년만 알고 있었을 뿐 “1453년”을 알고 있지 못했다.
한국역사교과서가 승자(勝者)의 편 다시 말하면 힘있는 사람들이 쓴 정사(正史)를 중심으로 쓰여 졌고, 한족(漢族)들의 주거주지 중원(中原)을 중심으로 쓰여진 동양사(東洋史) 그리고 그리스, 로마, 이태리, 불란서, 독일, 영국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기술된 서양사(西洋史) 때문에 그 반대세력이었던, 중국의 만리장성 북방의 “오랑캐”라던가,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서양세력에 대한 반대편에 섰던 이슬람교 신봉국가 페르샤 왕국이나 오토만 제국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남북미대륙이나 호주, 극(極)지방의 원주민들의 역사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한 상황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역사에 대한 균형감각을 갖게 하려면 반대세력의 역사도 가르쳐야 한다는 교훈을,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녔던 “1453년”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1453년”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세상은 어떠하였을까를 상상하여 본다!
(註) Wikipedia백과사전이나, YouTube에서 1453을 검색하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Written by Ted Han on June 10, 2013 NavyOfficer86201@gmail.com (718)631-1500
로그인 하시면 이 글에 대한 코멘트를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