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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롬비아
09/11/2011
꼴롬비아
봉 남 한 태 격 (www.Tedhan.com)
독자 분들 가운데에는 상기 제목의 한글 철자가 잘못 기재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으나, 지금 필자는 맨해턴 Uptown에 소재한, 우리가 컬럼비아 대학으로 발음하는Columbia University나,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공식명칭인 Washington D.C.라고 쓸 때 The District of Columbia에서 사용되는 Columbia에 대하여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남미 초입에 있는 태평양과 대서양 두 대양에 접한 국가 Colombia에 대하여 기술하려 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현지발음으로 쓴 것임에 그렇게 이해하여 주셨으면 한다.
아직까지 꼴롬비아는 국명의 발음만큼이나 우리 한국인들에게 생경한 나라다. 그러나, 꼴롬비아는 스페니쉬나 뽀르뚜기즈, 불어,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케리비안 소국 36개 섬나라, 도서국가를 포함하여 중남미 20개 라틴국가 가운데 6.25에 참전한 유일한 나라다. 귀에 익은 표현인 "6.25 참전 16개국"가운데 유일한 라틴국가인 것이다. 육군 3,089명의 병사를 파병하였고, 꼴롬비아 주력 Almirante Padilla함을 참전시켰다. 비전투원 10명을 포함하여 141명이 전사하였으며, 600명에 달하는 병사가 부상하였으며, 69명이 행방불명되었다. 그러나 지난 7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하여 아프리카대륙을 방문하고 귀환 길에 이명박대통령이 에치오피아(Ethiopia)를 방문하였기 때문에, 꼴롬비아가 동족상잔의 총성이 멎은 지 58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대통령 그 누구도 공식방문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인접국 뻬루(Peru)는 FTA와 같은 경제적인 이유로, 1903년까지 꼴롬비아 영토였던 빠나마(Panama)는 APEC 참석차 방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착 나라를 지켜 준 꼴롬비아는 대한민국 그 어느 대통령도 방문한 적이 없다. 예를 숭상하는 나라의 자세가 아닌 듯싶다.....
그 나라의 Juan Manuel Santos 대통령이 이틀 후 인 14일(수)부터 16일(금)까지 한국을 공식 방문한다.
1987년 말 Virgilio Barco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으나, 갑작스런 신병으로 서울에서 수술을 받고 즉시 귀국하는 바람에 실제 두 정상의 공식적인 만남은 두 나라가 전쟁터에서 혈맹관계를 맺은 지 61년, 두 나라가 국교를 수립한 지 49년 만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의 방한을 계기로 꼴롬비아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작년도 두 나라의 교역규모가 8억불에 육박할 뿐 아니라, 꼴롬비아 이민자들이 뉴욕에서 우리와 이웃하여 살아가고 있어, 그들을 알고, 우리와의 기존관계를 알고 있어야, 일부 미디아가 만들어 놓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는 4천6백만, 국토는 한반도의 5배에 해당하는 1,141,748 평방키로다. 안데스 산맥의 고지에 자리 잡고 있지만, 동부는 아마존 강이 시작되는 지역은 습지이며 아열대성 초원과 케리비안, 그리고 태평양 두 해안을 두고 있다. 인구는 세계에서 29번째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브라질다음으로 많다. 인구는 스페인 식민자 자손들과 노예로 끌려 온 아프리마흑인들의 후손 그리고 20세기 들어 유럽과 중동에서 건너 온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종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하고 있는 나라(The Most Megadiverse per Square Kilometer)로 알려져 있다.
1819년 Simon Bolivar장군 (그의 동상이 Central Park 남단 59가 중앙 입구에 있다.)에 의하여 Gran Colombia라는 국명으로 스페인왕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1830년에는 Venezuela와 Ecuador가 독립. 분리되었고, 1903년에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략적 위치를 탐한 미국이 지역 분리 독립 운동가들을 부추겨 Panama를 독립시켜 중미와 남미를 잇는 요지를 상실한다. 이를 무마시키기 위하여 1922년 미국은 25백만달러를 꼴롬비아에 보상하였다.
정체는 우리와 같은 대통령 중심제로 삼권이 분리되어 있다. 대통령임기는 4년 단임제였으나, 2005년 헌법을 개정 1회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원제로 102명이 전국에서 선출되는 상원과 지역과 소수인종 가운데에서, 인구비례로 선출되는 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 게릴라의 준동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는 1970년에서 1998년까지 GDP 평균성장률이 4% 이상에 이르렀다. 1999년 대공황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았으나, 최근 들어 경제가 다시 괄목할 만하게 성장 8.2%에 이르러, 중,남미권에서는 최상위권이다. 증권이 7,000포인트 이상 상승, 2010년 하반기에는 지수가 16,000으로 2009년 전반기보다 200 %이상 올랐다.
IMF에 따르면, 2010년 GDP 규모는 429,866 Billion달러로 세계적으로는 28위, 남미에서는 3위를 기록하였다. 일인당 국민소득은 6,273달러로 세계순위로는 82위다. 이 나라가 갖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인 구조적인 문제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처럼 빈부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국민소득 상위 20%가 국부의 63%를 소유하고 있고, 최하위 20%가 국부의 18%밖에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사회불안요소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전체국민 18%가 하루 2 달러도 안 되는 소액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꼴롬비아는 역사적으로 농경사회였으나, 20세기 중반 들어 도시화가 가속되었다. 농경인구가 22.7%이나, 농업이 차지하는 GDP는 11.5%에 불과하다. 18.7%의 노동력을 가진 제조업은 GDP의 36%, 58.5%의 서비스분야는 52.50%의 GDP를 창출하고 있다.
꼴롬비아는 지하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주요 수출제품은 석유, 석탄, 커피와 기타 농산물 그리고 금일 뿐 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에메랄드 최대 매장국이다.
미국이 수입하는 꽃의 70%이상이 꼴롬비아 산이다. 물론 제일의 무역파트너는 미국이며 그 다음으로는 EU, Venezuela, 중국이 그 뒤를 잇는다. 수출대전의 계속적인 유입으로 Peso화의 재평가압력이 거세게 대두되고 있다. 2007년 5월28일자 BusinessWeek지는 꼴롬비아를 지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The Most Extreme Emerging Market on Earth-라고 칭하였다.
혈맹으로 맺어진 Colombia와 Corea, 조속한 시일 내에, 같은 날 미국과 FTA가 체결될 것을 기원하면서 Juan Manuel Santos 꼴롬비아 대통령의 방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참고로 부산 유엔군 꼴롬비아군 전몰장병묘소에 음각되어 있는 문구를 인용한다.
"NINGUN LUGAR ES LEJANO PARA QUE UN COLOMBINO MUERA POR LA LIBERTAD" 영문으로 번역하면 "NO PLACE IS FAR AWAY FOR A COLOMBIAN TO DIE FOR FREEDOM"
Written by Ted Han on Sept. 11, 2011 NavyOfficer86201@yahoo.com (718)63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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