他山之石
副題: Crimea半島讓渡에 대한 歷史的 考察
逢 南 韓 泰格(www.TedHan.com)
필자의 고객의 대부분은 그리스인이다. 많은 그리스인들의 이름은 Demetri,Demitrios이거나, Giorgi, Michalis 또는 Nikita이다. 러시아 이름으로 그대로 Dmitry, Gorgi, Mihael, Nikita이다.
종교 또한 희랍정교회(Greek Orthodox)와 러시아정교회( Russian Orthodox)는 동방(東方) 정교(Eastern Orthodox)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과 소련(러시아, 露西亞, 俄羅斯의 전신) 양국이 서로를 인정하지않아 국교(國交)가 단절(斷絶)되어 있었을 때, 구한말(舊韓末)에 건축된 서울 정동(貞洞)러시아 정교회는 그리스 정교회 사제(司祭)들이 와서 수십년간 집전(執典)하였던 시대가 있었다.
그만큼 춥고, 후진(後進), 후발(後發) 러시아가 지중해(地中海) 문화 즉 Greek과 Byzantine Civilization으로부터 많은 문물(文物)을 흡수(吸收)하였다 뜻이다.
한인밀집지역인 Whitestone의 주(主)도로Utopia Pkwy선상에 Nikita’s Restaurant이 있다. 물론 그리스인 레스토랑이다. 그곳으로 갈 때마다, 떠올리는 “전설적” 인물이 있다. 다름아닌 냉전(冷戰)시대 한 가운데 서있는 소련(USSR)의 제일 서기장(書記長)이었으며, 지난 한달넘도록 외신 머릿기사를 장식하고 있는 Crimean Crisis(크리미아 위기)의 원인(遠因)을 제공한 Nikita Khrushchev수상(首相)이다. 바로 그가 1954년 2월 소련 영토였던Crimea반도를Ukraine으로 양도하였다.
17세기이래 유라시아(Eurasia) 양대 대륙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영토확장에 혈안(血眼)이 되어있었던 러시아인들이 아니었던가? 19세기 말 구한말에는 한반도(韓半島)로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고종(高宗)황제의 아관파천(俄館播遷1896.2.11.~1897.2.20.)을 주도(主導)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럼 왜 100년전인1853년부터1856년까지 3년동안 영(英), 불(佛), 오토만 터키(土耳其)를 상대로 러시아인200,000명이상이 목숨바쳐 싸웠던 전략적 요충지이며 부동항(不凍港)으로 Crown Jewel(왕관위의 보석)으로 묘사(描寫)되는 Crimea반도를 Ukraine으로 양도하였을까 고찰할 필요가 있겠다.
러시아학(Kremlinology)을 전공하는 서방(西方)학자들은 다음 3가지로 요약(要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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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ushchev로서는1953년3월 Stalin사후(死後) 정권을 장악(掌握)한 이후, 본인의 정치력을 실험해 볼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Test his Political Power-
향후 많은 정책을 수행하여 나가야 할 입장에서 어떤 정치국원(Politburo)이 본인이 하고자하는 정책에 반기(反旗)를 드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Crimea반도가 바로 그 제물(祭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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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시 나치 독일에 대항(對抗)하여 싸운 Ukraine에 대한 우정의 증표(A Token of Friendship)로, 선물(Gift)로 주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보는 추측도 있다. 또한 전후(戰後) 독립을 추구하는 Ukraine민족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을 때였다. Stalin이 제 2인자로 부상(浮上)하고 있는 Malenkov나 Beria를 견제(牽制)하기 위하여 1949년Khrushchev를 모스코바로 불러들이기 전까지 그는 Ukraine에서 공산당 정치위원(Commisar)로 Stalin의 숙청(肅淸)작업을 집행한 바 있다. 그의 부인은 Ukraine출생이다. 그는 모스코바 정치국원 그누구 보다도 Ukraine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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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lin이 1944년 Crimea반도에서 다수(多數)를 이루며, 대대(代代)로 살아왔던Tatars인들을 전쟁동안 나치독일군에 협력하였다는 이유로 대량 추방(大量追放)시킴으로써 Crimea반도는 공황(恐慌)에 가까운 경제적 재앙(災殃)을 맞고 있었다. 그러한 재건비용을 Ukraine으로 떠넘길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는 분석도 유력하다.
지난 60년간 Ukraine인들이 재건(再建)하여 놓은 Crimea를 “북극의 곰”이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삼켜 먹었다. Crimea반도에 주둔하고 있었던 Ukraine병사들이 기지(基地)를 말없이 내어주고 “보타리”를 싸가지고 Gate를 빠져나오는 모습이 측은(惻慇)하고 불쌍하기까지 하였다.
무력(武力) 앞에 정의(正義)이란 존재하지 없었고 국제법(國際法)도 종이 조각이었을 뿐이다.
미국도 유럽도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필자는 자고(自古)로 Sanction(경제적 제재)이 실효(實效) 를 거두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4강(强)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이다. 절대로 강건너 불이 아니다……
Written by Ted Han on March 23, 2014 NavyOfficer86201@gmail.com (718)631-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