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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Nam Style의 "原作者"는 朴正熙
10/28/2012
朴正熙키드: 朴載相(GandNam Style의 Psy) 逢南 韓 泰格(www.TedHan.com) 이태리 Milano에서부터 남미 꼴롬비아 Barranquilla, 호주의 Sydney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미(美) Maryland 주 Annapolis 소재 해군사관학교 사관생도에서부터 필리핀 Cebu주(州) 교도소(CPDRC) 에서 수형(受刑)생활을 하고 있는 죄수들에 이르기 까지, 온 세상사람들이 열광(熱狂)하고 있는 “강남스타일”을 부른 싸이(Psy)의 본명은 朴載相(박재상)이다. 1977년12월31일생이니, 두 달 후면 서른다섯이 된다. 江南(강남)스타일 아니 “GangNam Style”이 더 세상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각계각층의 뉴요커를 상대하고 있는 필자는 요즈음 GangNam의 “Gang”의 발음을 정정(訂正)하여 주고, 그 위치와 뜻을 설명하여 주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割愛)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곡 속에 담긴 풍자(諷刺)와 해학(諧謔)들을 설명하여 주어야, 곡의 진미(眞味)를 느끼고 진가(眞價)를 음미(吟味)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시간이 더 소요!!!되는 이유는 “Gang”이 범죄집단을 뜻하는 gang과는 다른 뜻이라는 것을 설명하여 주어야 하고, 짓궂은 사람의 귀에 전달되는 “Condom Style”과는 거리가 멀다라는 것을 부언하여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강남 스타일”의 곡을 설명할 수 있는 한국인은 많겠지만, 정작 한국인들에게 강남을 설명할 수 있는 한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게다. 필자는 한국인들에게 강남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극소수(極少數)중의 한 명이라고 자부(自負)한다. 80년대 서슬이 퍼래 숨막혔던 전두환(全斗煥)정권을 피해 지금 비록 머나먼 뉴욕에 살고는 있지만, 대한민국의 수도(首都) 서울이 지역간 소득격차(所得隔差)로 인한 이질감(異質感)같은 것을 암시(暗示)하는 듯한, 한강을 중심으로 “강남(江南), 강북(江北)”으로 나뉘기 훨씬 전, 조선조(朝鮮朝)시대 양반의식(兩班意識)의 잔해(殘骸)가 남아 “문안, 문밖”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시정(市井)에서 쓰여지고 있었을 때 “문안”에서 살아왔던 세대에 소속(所屬)된 사람으로, 장마철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長靴)가 아니면 걸을 수 없었던 “한강(漢江)의 남쪽” 변두리 “새롭게 개발되는” 지역에 보금자리를 장만하여 25여 년 간 “집문서” (Deed)를 소유하였고 재개발이 된 후, 아파트 가격이 십여 배(倍) 상승(上昇)하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기현상(奇現象)을 체험하였으니 그렇게 자부할 만도 하지 않겠는가? 몸은 유럽과 미국 등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강남 스토리”의 무대(舞臺)인 강남의 개발사(開發史)를 한 몸으로 경험하였던 산 증인(證人)이 아닐 수 없겠다! 70년대 말 주소가 “서초구 서초동 XX 은행직원아파트”로 시작하였으나, 재건축 후에는 “강남구 서초동 삼성(三星)레미안 아파트”로 바꾸었다. 이름까지 부(富)하게 변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주인공 싸이(Psy)가 태어날 즈음, 중동건설 붐(Boom)으로 외화가 물릴 듯 유입되었던 시절 아라비안 나이트(Arabian Nights)와 같은 야화(夜話)가 쓰여지기 시작하였다. 江南(강남), 아니 한강의 남쪽은 많은 국민이 “죽도록” 증오(憎惡)하는 박정희 유신(維新)시대 개발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강남스타일” 초기 화면의 배경인 63빌딩도 없었고, 맨해튼과 같은 “지금의” 여의도(汝矣島)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한강(漢江)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다리는 하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강남스타일”에 세상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싸이의 코믹타취, 음악성과 춤, 율동(律動) 그리고 “기죽지 않는” 당당한 자세, 영어대화능력 그리고 전달 매체 SNS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배후에는 영상에서 잘 나타난 풍요(豊饒)로운 사회가 구축(構築)되어 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강남스타일”은 가능하지 않았다. LPGA에서 트로피를 거머쥐는 신지애, 박인비 오지영, 김하늘, 최나연 등 낭자군(娘子群)을 우리는 박세리 키즈라고 부른다. 1998년 박세리가 이룬 LPGA의 우승을 보며 꿈을 키운 Kids(아이들)라는 뜻이겠다. 4분13초 비디오 영상으로 전세계를 “정복(征服)”한 박재상은 박정희라는 걸출(傑出)한 인물이 그 결정적인 시기에 대한민국을 반석(盤石)위에 올려놓지 않았었다면, 오늘 강남스타일도, Psy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오늘의 GangNam Style은, 대한민국의 풍요를 전제(前提)로, 주제(主題)로 한 것이고, 그 기반(基盤)은 박정희장군이 깔아 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의 가장 몹쓸 결점은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보릿고개를 해결하여 놓았고, 대한민국을 선진국(先進國) 반열(班列)에 올려 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에게 존경은커녕, 비하(卑下)하거나, 무시(無視)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강남스타일 아니 GangNam Style의 “原作者(원작자)”는 朴正熙다! Written by Ted Han on October 28, 2012 NavyOfficer86201@Gmail.com (718)63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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